아기가 가장 원하는 것
아기들이 태어난 지 50일을 이틀 앞둔 생후 48일째, 이날은 토요일로 남편과 둘이 육아를 하는 날이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엄마가 없는, 남편과의 둘만의 육아 날에는 아기들이 보다 많은 투정을 부린다. 아기들이 엄마의 손에 익숙해져서 그런 건지, 남편과 내가 육아를 잘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마 두 가지 이유 모두 들어맞을 것이다.
이준이와 이현이가 모두 잠이 든 틈을 타 잠깐 산책 겸 마트에 다녀오기로 했다. 물론 나 혼자서. 다녀올 동안 아기들이 깨지 않을 것이란 이상한 확신을 가지고 남편에게 두 아기를 맡긴 채 외출을 감행했다. 저녁에 먹을 것을 사기 위한 이유가 컸지만 바깥 날씨를 느끼고 싶은 나의 마음이 앞선 짧은 외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트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약 십분 정도. 따뜻해진 날씨를 느끼며 주변에 핀 꽃들의 알록달록함을 느끼며 기분 좋게 걸었다. 그리고 예전에 거리를 걸을 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이들의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내가 그 입장이 되어서 그런가 보다.
마트에 도착해서 상추와 삼겹살 한 근, 그리고 간식거리를 몇 개 샀다. 저녁 메뉴는 삼겹살이었기에! 모든 살 거리를 산 뒤 집으로 향했다. 집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5분? 그때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아기들이 깬 것이다.
두 명의 아기가 모두 깨어 우유를 주어야 하는 상황인데, 남편은 혼자였고 나에게 급히 전화를 걸 수 밖에.
조금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었다. 예상외로 집안엔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지 않고 있었다. 대신 남편의 지친 기색 가득한 낯빛은 있었고. 어떻게 아기들을 달랬는지 물어보았다. 남편은 한 명씩 달래주었다고 했다. 한명을 달래는 동안 나머지 한 명은 울어도 어쩔 수가 없었단다. 다행히 아기들은 아빠의 품에서 빨리 진정된 것 같다.
고대하던 저녁 식사를 빨리 하고 싶었다. 아기들을 목욕시키고 재운 뒤, 남편과 둘만의 저녁 식사를 즐기기로 했다. 아기들을 목욕시키는 것 까지는 매우 순조로웠다.
그런데 문제는 잠이었다. 이현이는 우유를 먹고 잠들었다. 반면 이준이는 우유를 먹어 배부른 상태임에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쪽쪽이(공갈 젖꼭지)를 물려주면서 옆에서 토닥여 주었는데 잠들었다가도 또 깨고를 반복했다.
아기들이 혼자 잘 놀 때, 남편이 아기 목욕을 시킬 때 틈틈이 차려둔 저녁 식사가 식탁 위에 놓여 있었고, 이제 먹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발생!
음식이 식기 전에 맛있게 먹고 싶다는 욕구가 앞서 빨리 잠들지 않는 이준이를 보며 속상함의 감정이 피어올랐다. 결국 남편이 이준이를 안아서 재웠다.
그리고 저녁식사 후 이준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에 나온 지 48일째밖에 안된 작고 작은 아기에게 빨리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속상함을 표현한 엄마라니, 미안해해도 모자를 판이 아닌가.
미안한 마음에 그 이후로 밤잠을 잘 때까지 최대한 오랜 시간 이준이와의 놀이 시간을 가졌다. 이것으로 이준이에게 사과를 받으려는 듯 말이다.
내가 이준이와 놀아주며 아기들 케어를 담당할 때 남편은 남아 있는 집안일을 마무리했다. 저녁 식사 후 쌓인 설거지를 하고 젖병 소독과 세탁물을 건조기에 넣어 작동시키는 일 등을 했다. 하지만 이 집안일들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마무리될 수 있었다.
내가 두 아기를 모두 다 돌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명의 아기가 같이 울면 남편이 달려와 한 명을 돌보아야 했고 이 일이 반복되면서 집안일의 종료 시간은 뒤로 뒤로 늦춰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혼자서도 두 명의 아기를 볼 수 있지만 이날은 아기들이 대변을 자주 봐 그때마다 씻겨 주어야 했고, 울었을 때 안아주어야만 진정이 되었다.
왁자지껄 했던 시간이 지나 집안일이 마무리되고, 이현이는 우유를 먹던 중 깊은 밤잠에 빠져 들어갔다.
이제 남은 건 이준이.
이준이를 안고 말했다.
"이준아~아빠랑 잘 거면 이손(오른쪽 손을 들어주며) 엄마랑 잘 거면 이손(왼쪽 손을 들어주며) 드는거야"
반복해서 두세 번.
"자 시작!"
시작 소리를 끝내자마자 이준이는 바로 오른쪽 팔을 살짝 들어 보였다.
나와 남편은 동시에 눈이 동그래지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 이준이도 나에게 화가 났던 것일까.
내 말을 이해하고 팔을 들어 보인 것은 아니겠지만 참 재미있는 상황이 펼쳐졌다. 이런 재미를 통해 웃음을 선물해준 이준이에게 내가 가졌던 미안한 감정은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저녁 식사 후 이준이와 많이 놀아주는 것으로 내가 느낀 감정이 지우개로 지우듯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만 늦게 식사해도 되는 건데, 이준이가 빨리 자기만을 바랬다니...내가 가졌던 이준이에 대한 미안하고도 미안한 감정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조금 사라졌다.
"이준아 엄마가 미안해~우리 아기 엄마가 너무 많이 사랑해."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인 이날까지 아기들은 스스로 자기보다 우리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우유를 충분히 먹고 자연스레 잠드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이 말은 즉, 나와 남편의 몸이 힘들어졌음을 의미했다. 많이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흔들흔들 흔들어주어야 했으니 말이다. 분명 졸린데 잠들지 못하고, 안아주면 눈이 감긴 아기들. 안고 있다가 내려놓으면 다시 울고 안아주면 눈물을 그친 아기들.
사람 손에 익숙해졌다고 해야 하나, 사람 손을 벌써부터 타기 시작했다고 표현해야 하나. 유독 그런 날이었다.
자는 시간뿐 아니라 아기들이 놀 때도 마찬가지였다. '안아주기'는
이 시기의 놀이라고 한다면 흑백모빌, 초점책을 본다는 것. 또는 바운서에 앉아 움직임을 느끼거나 우리가 놀아주는 것. 이 정도일 것이다.
우리 아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여러 놀이 중에서도 아기들은 누군가 자신을 안아 함께 놀아주는 것을 가장 즐기기 시작한 것 같았고, 이날 아기들 옆에서 쪽잠으로 에너지를 채운 우리는 아기와 놀아주는 것으로 대부분의 에너지 소모를 해야 했다.
낮에 눈을 떠 놀이하는 시간이 길어졌으나 사람의 손에 안겨서, 혹은 사람의 품을 느끼며 놀이하는 것이 우리 아기들에게는 최고의 놀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직 단정할 수 없지만 이날만큼은!)
아기가 원하는 대로 안아주는 것에 대해 한치의 의심도 없었고, 안아서 놀아주기는 계속되었다.
안고 이곳저곳 돌아다니기, 안고 아기의 눈을 보며 노래를 불러주거나 말 걸어주기, 무릎 위에 앉혀 무릎 움직이며 흔들림 주기 등등 모두 나와 아기가 한 몸이 된 채 할 수 있는 놀이들이 이어졌다. 물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시간은 빼고 말이다.
예를 들어 아기의 하루 일과가 '낮잠 자기-기저귀 갈기-우유 먹기-트림-쿠션 위에서 놀기(모빌 보기, 초점책 보기)-엄마, 아빠와 놀기'였다면,
우리의 일과는 '아기 안아서 낮잠 재우기-기저귀 확인하고 갈아주기-우유 먹이기-트림 시키기-안아서 놀아주기-안아서 낮잠 재우기-기저귀 확인하고 갈아주기-우유 먹이기-트림 시켜주기-안아서 놀아주기'가 반복되는 것 같았다.
중간중간 아기의 혼자놀이가 있긴 했지만 너무 짧았다. 적어도 이날의 느낌은 그러했다고 말하고 싶다.
팔이 아파지고 몸 전체가 힘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계속 아기를 안아주는 것이 맞는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으나 이 의구심을 해결하기도 전에 아기들이 밤잠을 잘 때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기들은 여전히 이전보다는 안아달라는 울음을 많이 보였으나 어제 만큼은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하루의 느낌일 뿐.
아기들이 커가면서 안아주었을 때 느껴지는 편안함의 느낌을 보다 많이 요구할 것이라는 건 당연히 추측해 볼 수 있었고,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놀이 중에도 짧지만 혼자 놀이를 먼저 하고 이후에 칭얼거림을 보이니 안아주는 것이 나쁜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잠잘 때! 아기가 잠들 때까지 무조건 안고 있는 것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일지 아직 그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