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고양이 구월이, 우리가 서로에게 다가간 방

by 별미소


우리 집 네 식구 이야기, 막내 고양이 구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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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네 식구가 산다.

나와 아내, 딸, 그리고 고양이 구월이.


구월이는 수컷이고, 덩치는 작은 강아지만큼 크지만 겁이 많은 편이다.

작은 물건 떨어지는 소리에도 놀라고,

초인종이 울리면 배란다나 이불 속 같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먼저 숨어버린다.


성격도 깔끔하다.

안고 뽀뽀라도 하면 바로 내려가 구루밍으로 닦아내고,

하루 중 1/3은 자기 몸을 단정히 하는 데 시간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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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좋아한다.

평소엔 1미터 정도 떨어진 지근거리에서 조용히 우리를 바라보고,

집에 손님이 오면 자기 공간에서

창밖 새를 보거나 애착인형을 가지고 놀며 혼자 시간을 보낸다.


그렇다고 사람을 안 좋아하는 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 다리에 머리를 부비고

“잘 잤어?”는 듯 인사를 건넨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면 꼬리를 몸에 감으며 반겨준다.

자기 전에는 침대에 올라와 꾹꾹이를 해주고 골골송도 들려준다.

내가 잠들면 그제야 따라 잠이 든다.




처음부터 이렇게 가까웠던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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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이는 2020년 9월 우리 집에 왔다.

첫날 모습이 지금도 또렷하다.


낯선 환경이 너무 무서웠는지

며칠 동안 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스트레스를 줄여주려고 내가 쓰던 방을 구월이에게 내주고

나는 밥과 화장실을 챙길 때만 들어갔다.

평소엔 컴퓨터 본체 뒤에 숨어 있다가

내가 방을 나가면 그제서야 살짝 얼굴을 내밀곤 했다.


그렇게 2주 정도 지나자

조금씩 익숙해졌는지 방 안에서는 활발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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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쯤 됐을 때,

방문 앞에 서서 거실을 바라보는 구월이를 처음 봤다.

낮에는 끝내 나오지 않았지만

새벽이 되면 몰래 거실과 방, 부엌을 돌아다니며

집안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때도 부르면 오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경계심을 놓지 않았다.




친해지기 위해 했던 노력들


조금이라도 친해지려고 캣타워도 설치하고

여러 장난감을 사서 놀아줬다.


특히 구월이는 긴 끈 장난감을 좋아했다.

낚싯대 끝에 끈을 달아 흔들면

눈빛이 달라지며 낚아채고 물고 씹었다.


한번은 끈으로 놀다가 깜빡 잊고 치우지 못했는데

다음 날 보니 끈이 끊어져 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병원에 갔더니

엑스레이에 끈이 선명하게 보였다.


다행히 대장까지 넘어가지 않아

개복 수술은 하지 않았다.

그 후로 장난감 관리는 정말 신경 써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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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할 때도

구월이가 창밖 보는 걸 좋아하는 걸 알고

햇빛 잘 들고 전망 좋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 구월이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이름을 부르면 “야옹” 하고 달려오고,

집 안 어디든 졸졸 따라다닌다.

잠잘 때도 내 팔베개에 머리를 올리고 눕는다.

여전히 뽀뽀는 싫어하지만

예전처럼 바로 도망가진 않는다.




구월이가 알려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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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은 빠르지 않지만, 결국 도착한다


구월이와 함께 지내면서

마음에는 ‘무게’가 있다는 걸 느꼈다.


진심은 가볍게 툭 던져지는 게 아니라

조금 무겁고, 그래서 천천히 전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도착한다.


내 진심이 시간이 걸려 구월이에게 닿았고,

구월이의 마음도 그만큼 속도는 느렸지만

분명하게 나에게 전달됐다.


요즘은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다.

그 속에서 진심은 쉽게 묻히고 놓치기 쉽다.

느리고 조용히 다가오는 마음을

우리는 종종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오히려 진심은 더 특별하다.

사막에서 우연히 발견한 오아시스처럼

한 번 마음을 적시면 오래 남는다.


나와 구월이가 그렇게 시간을 쌓아왔듯이

진심은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꾸준히, 한결같이 건네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돌아오게 마련이다.


- 별미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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