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도 추억이 될까?(2화)

맑은 구름

by 김 미 선

화물차를 샀지만 수입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힘들고 지저분하고 돈도 안 되는 블루칼라의 속성이었다.

중고로 샀던 화물차는 너무 낡고 고장이 잦았다.

뒤꽁무니에서 시커맨 매연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던 고물차는 더 이상 가동이 불가능했다.


차는 늙은 노세처럼 쓰러졌다.

할부로 새 차를 들였다.

할부를 갚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달려야 했다.

그저 낮이고 밤이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휘몰아쳤다.


누구나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대기업도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몰릴 수 있다.

집을 청산하고 쫓겨나면 길거리 악사가 될지 엿장수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남편도 안 해 본 일이지만 당장 생계를 유지하려면 그나마 그 일에 죽어라 매진해야 했다.


다행히 화주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인정받으면서 일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몸은 고단했지만 그만큼 수입은 늘어갔다.

돈이 조금 모이자 사무실을 차렸지만 또 실패했다.

왜 자꾸 덜 여문채 수확을 하려 했는지, 조급증을 이기지 못하고 또 나가떨어졌다.


못 사는 사람의 심리는 하루빨리 여기서 헤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그러다 보니 조금 생각하고 많이 서두르게 된다.

그것이 실패의 원인이다.

빵도 숙성을 거쳐야 맛있듯이 과정이 삭제된 결말은 허망하다.


줄어들려던 길이 더 멀어져 간 셈이다.

남편은 다시 화물차 기사로 돌아왔다.

사무실을 차려보겠다는 집념은 잠시 접어 두었다.

그 계통의 생리를 연구하고 화물 오더에 대한 노하우를 익혀 나갔다.

짐꾼은 오너가 되기 위한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 2년 동안의 시간이 경과했다.


그러다가 사무실을 개업했다.

이번엔 사생결단이었다.

여기서 성공하지 못하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또다시 도전한 남편의 사무실은 지하였다.

나는 경리와 청소를 담당하면서 그의 일에 적극적인 조력자가 되었다.


다시 문을 연 사무실엔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몰려들면 몰려들수록 화장실 오물도 넘쳐났다.

밀려드는 기사들이 배설해 놓고 간 화장실은 밤낮없이 내 담당이었다.

화장실을 수시로 청소하면서 오물이 옷이든, 머리든, 얼굴이든 튀겼어도

그것은 대수롭지 않았다.

결벽증 환자였던 내가 오물 투성이를 치우다니.

"괜찮다, 괜찮아." 무한 긍정으로 나를 마구마구 부추겼다.


겨울에는 밖에 있던 화장실 물이 얼어버려 지하에서 물을 길어다 청소를 했다.

이보다 더 힘든 일이라 해도 감지덕지였다.

한 발짝도 물러서면 안 되는 절벽 앞의 그 절박함이 우리를 이끌었다.

절박함은 코너로 몰릴 때 더 용기와 오기가 샘솟는 것이리라.


무슨 일이든 죽기 살기로 덤벼보면 나중에는 승패가 나타난다.

결단의 강도에 따라서 勝(승)으로 나타날 확률이 높다.

고생도 클라이맥스가 있다.

그때 고삐를 꽉 쥐고 고지를 향해 전진한다면 정상이 저 만치서 보인다.

우리가 산을 오를 때도 숨이 차올라 그만 올라가고 싶다가도 조금만

참고 올라가다 보면 정상이 보이지 않던가!


먹구름은 뭉게구름으로 변하더니 기어이 햇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고지를 향해 올라오기까지 차올랐던 숨소리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아무 잘못 없이 대전까지 떠내려온 이후로 남편의 언행에 충격을 받아

한 때 죽음을 생각했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밧줄이 필요한지, 낙하를 할 것인지, 차에 치일 것인지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의 초롱한 눈망울이 더욱더 나를 채근했다.

`정말 그럴래?`

`그렇다면 저 애들은 어쩔 건데?`

모성과 냉정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다가 결국은 통곡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모성이 이긴 것이다.

포기하고 싶던 삶을 아이들이 건져주었다.


성공은 발병 난 소걸음으로 오고 그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성공하기까지 흘렸던 프로락틴(슬플 때 흘리는 눈물 속 호르몬)의 양은 아마도 아마도

몇 양동이가 될지 모른다.

기사에서 작은 사무실 사장으로, 사장에서 그 업종의 선두자리로, 선두자리에서 이사장으로

위치와 자리를 변화시키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가난한 건 죄가 아님에도 늘 주눅 들어 살았고, 해충들은 가난한 자들의 동반자가 된다는 사실도

그때 배웠다.

지금도 주방에 서리태라도 떨어져 있으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때의 바퀴벌레가 아직도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어서다.


처음 이사 온 동네에서 그 동네 아이들 조차 우리 아이들을 업신여기고

때리고 구박하며 텃새를 일삼았다.

그 생각을 하면 엄마로서 지금도 미안하고 속상하다.

타향에 대한 설움이 복받치고 당장 수원으로 올라가고 싶어서 밤잠을 설쳐야 했다.

북한의 실향민들이 북쪽을 바라보며 울듯, 보이지 않는 수원을 향해 눈물을 펑펑 쏟았다.


우리가 이곳으로 내려온걸 뒤늦서야 알게 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께서는

대성통곡을 하고 우셨다고 한다.

친정에서도 아버지와 언니, 오빠들이 울고 불고 난리가 났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객지로 이주하게 된 것이 그토록 피붙이들에게도 측은지심으로 젖어든 거였다.


친가와 외가에서 조금씩 보태주던 생활비도 걷어차고 온다 간다 말도 없이 떠나온 타향살이.

피난민 보따리처럼 울멍줄멍 짐을 싸서 내려오던 수원과 대전의 거리는 왜 그리 멀던지.

이삿짐 트럭에 올라탈 때부터 모험과 시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알기나 했는지.


그때만 해도 젊었고 젊다는 것을 담보로 우린 황야의 무법자가 되었던 것이다.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엎어지고 또 엎어지고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결국 빛을 찾아내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수북이 쌓인 현금을 싸들고 귀가하는 길은 공복이었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없던 시절에는 아무걸 보아도 배가 고팠지만,

주머니가 두둑해지면서 그 어떤 것도 갈구하지 않게 되었다.

길 모퉁이에서 퍼져 나오던 찐빵의 구수한 유혹은 내 발길을 붙잡았지만

나의 마음과 뱃속을 채워주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은 동네 아이들이 빵이고 떡이고 가지고 나와서 먹는 것을

멀거니 쳐다보다가 침만 꼴깍거리면서 돌아서야 했다.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돈이 부리는 위력은 참말로 치사하고 더럽고, 흉물스럽고 간사했다.

그걸 참아내야만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다.


실패와 시련 뒤에는 늘 고통을 이겨 낸 대가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인내한 사람들에겐 조금 느릴지라도 그것이 레드 카펫을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본다.

실패를 했다는 것은 아직 덜 익었다는 표시다.

우리가 매번 고뇌하는 생의 각본이 그렇다.


꺾여도 뿌리만 뽑히지 않으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다.

아무리 죽을 거 같다가도 다시금 열리는 게 인생길이다.

먼 길을 돌아 이제야 정상에 안착한 우리는 인생공부를 너무나 열심히 했고 확실하게 배웠다.

삶이 어떤 거라는 걸.

생은 한순간도 쉽지 않다는 것을.


그 길에서 내가 건져 올린 생각이 있다.

성공은 고통과 눈물을 먹고 자란다.

성공으로 가는 길엔 지름길이 없다.

앞날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기에 항상 준비하고 신중해야 한다.

경험은 가치를 만들고 가치는 돈을 만들어 준다.

몸과 마음으로 부딪히며 배워온 나만의 인생 교훈이다.


만약 안온하게 직장만 다녔다면 부자는 되지 않았어도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 올 일도 그곳을 향해 울 일도 없었겠다.

굴곡진 인생의 쓴맛들이 어떻게 발전을 도모했으며 어떤 경로를 거쳐

정상을 향해 나아갔는지 배울 수 없었을 것이다.

빙글빙글 도는 의자에 앉는 그 방법을 몰랐을게 분명하다.

그래서 젊어서 고생은 금을 주고도 못 산다고 했다.


지하에서 햇살이 비추는 1층으로 사무실을 옮기던 날을 잊지 못한다.

하루종일 불을 켜고 있어야 했던 그곳에서 온종일 햇살을 받을 수 있는

밝은 공간은 얼마나 큰 축복이었던지.

돈은 그렇게 어둠을 살리는 빛이었다.


중국 소설가 위화는 그의 책 《인생》에서 주인공 푸구이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옛 말에 큰 재난을 당하고도 죽지 않으면 훗날 반드시 복이 있을 거라 했네.`

그렇다.

잠시 엎어져도 죽지만 않으면 살아갈 희망이 있다.

어려운 시절 그걸 극복하지 못하고 죽었더라면 나는 오늘날까지 가족들에게

큰 멍만 안겨준 죄인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런 결실도 얻지 못하고 죽음으로 끝내는 인생은 누구에게든 상처만 줄 뿐이다.

사람은 어떤 시련이든지 부닥칠 수밖에 없다.

우린 숙명처럼 그걸 극복해야 될 운명들이다.

차츰 물러날 먹구름을 상상하면서.

가난의 추억도 달콤한 결실이 없으면 악몽의 지난날 일뿐 무슨 추억이 되랴!


몽실몽실 떠있는 열기구와 풍선. 유화, 필자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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