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면

[에세이] 새벽 1시, 어떤 설명이 필요한 밤

by 김작가

어렸을 때부터 토크쇼를 좋아했다. 그땐 말그대로 '어렸을 때'라 방송작가와 게스트가 미리 대본에 짜는 건 줄 몰랐다. 게스트가 당황하면 당황하는 것이었고, 놀라면 놀라는 것이었다. 보이는 것이 곧 사실인 세계였다. 권선징악과 희노애락이 있는 TV 속 세계는 언제나 '옳은 세계'였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시기 전까지 TV는 거의 모든 것이었다. 책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TV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토크쇼를 보며 말하는 법을 베꼈다. "아 저런 식으로 반응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는구나." "저런 질문은 멋있다. 나중에 친구한테 해봐야지."


토크쇼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게스트이지만 난 유독 질문에 관심이 많았다. '질문'이라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 단어와 문장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대답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거라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학교 기숙사에 들어갔다(이때부터 쭉 밖에서 살았다). TV가 없으니 잡지에 관심을 가졌다. 지금은 폐간한 『무비위크』라는 영화잡지였다. 역시 가장 재미있는 건 활자로된 토크쇼라고 볼 수 있는 인터뷰였다. 그때부터 인터뷰라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아니, 질문을 잘 하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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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준씨는 어떤 사람이에요?"


김중혁의 장편소설『좀비들』에 나오는 질문이다. 마을 사람들이 이유없이 좀비들로 변하면서 주인공 여자와 남자만 주택에 남는 상황에서 여자가 던지는 질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이 질문에 밑줄을 그었다.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으니까, 그래서 더 듣고 싶은 질문이니까. 누가 나에게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생각했보았다.


"저는...모르겠습니다. 아직까지 모르겠습니다."


면접용 대답은 준비해놓았지만(에버노트 어딘가에 있다),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대답은 글쎄, 대답이 가능하기는 할까. 친구를 만나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끊임없이 나의 정체를 밝혀달라고 부탁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가끔, 아니 자주 나보다 나에 대해 더 잘아는 사람을 만나면 고마운 이유다. 반드시 친한 친구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거리감이 있는 사람이 나에 대해 더 냉정하게 말해주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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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가지지 않았다. 힘든 일이 있었고, 힘든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미뤄두었다. '술자리에서 던지는 요즘 어떻게 지내라는 질문은 어떤 세계에 노크를 하는 소리다'라는 말을 작년 이맘때 쯤에 했었다. 그 일년동안 난 몇뼘이나 더 성숙해졌을까. 작년보다 더 실수에 관대해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약하고 작년보다 긍정적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여린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이 이어진 뒤 갑자기 '속상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유는 몰라도 왠지 속이 상한데, 이 말이 너무 잔인한 것 아닌가 싶어서 무서웠다. 우리의 속은 어떤지 몰라도 음식은 상하면 버리니까. 먹을 수 없고, 쓸모없어져 버리니까, 나의 속도 상하게 두고 싶지 않은데, 여전히 쉽지 않다. 새벽 1시 27분, 어떤 설명이 필요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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