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하릴없이 걷는 발걸음엔 지독한 관성이 묻어 있었다. 걸어야 한다는 믿음과 걸을 수밖에 없다는 권태 그리고 걷고 있다는 후회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문자가 왔다.
"뭐해"
"산책하러 나왔어."
물음표가 없는 질문 뒤 이어진 대답은 소금기 없이 건조했다.
"그때 생각했어요. 내가 어쩌면 피하려고 걷는 거일 수 있다고.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도망치는 거죠. 티나지 않게. 누가 내 손을 잡고 반대방향으로 확 끌어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런 느낌을 좋아하거든요."
해가 지고 달이 뜨는 성실해서 지겨운 저녁. 가로등은 마치 서로를 의무적으로 비추는 게 외로워보여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어쩌다보니 밖에 나와 걷고 있는 자신을 보며, 문득 소름끼치게 조용한 발걸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 없는 말이 나왔다.
"필요하지 않아"
곧장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쿵쿵, 발을 크게 구르며. 발바닥으로 온전히 중력감을 느끼니 조심씩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