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7일 반팔이 입으니 추운 여름
식탁에는 공식이 있었다. 식탁의 한 면은 벽에 붙어있어 가용한 면은 세 면이었다. 형과 나는 중간 자리, 아버지는 우리의 오른쪽, 어머니는 왼쪽이었다. 이유는 없지만 항상 그렇게 앉았다. 부엌은 식탁 바로 옆에 있었고, 어머니는 반찬이 만들어지는대로 식탁에 하나씩 올려놓았다. 나는 항상 가장 먼저 식사자리에 앉는 사람이었다. 이유는 없지만 주로 그랬다. 저녁이라는 듣기만 해도 좋은 단어가 하나씩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게 좋았고, '오늘 저녁은 뭐예요'라고 묻는 게 좋았다. '턱' 사기그릇과 식탁 위에 깔린 유리가 부딪치는 소리도 듣기 좋았다. 찜닭과 우엉무침 그리고 장조림이 내는 향기가 뒤섞였는데 그 향기의 이름을 '저녁'으로 기억하고 있다. 짬조름한 저녁 향기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식사가 어느정도 완성되면 어머니는 밥 먹으라고 모두를 향해 외쳤다. 집이 좁아서 어머니의 말은 작은 방에서 게임을 하는 형과 큰 방에서 TV를 보는 아버지에게도 충분히 들릴 만했다. 형은 게임을 일시정지하고 나왔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내가 가서 "아버지, 어머니가 저녁 드시래요"라고 말하기 전에는 안 나오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주 그러셨다. 그렇게 아버지와 형, 내가 자리에 앉으면 아버지는 바로 수저를 들고 식사를 하셨고, 나와 형은 어머니가 밥을 먹기 전까지 먹지 않았다. 어머니는 "왜 안 먹고 있어. 빨리 먹어."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먹지 않았다. 아직 앞치마를 메고 있는 어머니에게 미안해서. '밥식는다 빨리 먹어라'라는 말을 믿기에는 밥이 그렇게 빨리 식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밥하는 사람 따로있고 먹는 사람 따로 있냐는 생각이 항상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자리에 앉으면 형과 나도 밥을 먹었다. 저녁을 채우는 이야기는 보통 아버지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항상 어떤 이야기를 수집해와서 풀어놓았다. 출처는 책에서 보던 이야기나 TV에서 본 이야기다. 이원복 선생님의 「먼나라 이웃나라」를 특히 좋아하셨는데, 지금도 책을 많이 읽으시는 걸보면 그 책이 만화책이었기 때문에 좋아하셨던 건 아닌 것 같다. 아버지는 '네덜란드의 또다른 이름이 뭔지 아느냐' '중국의 국기 이름이 뭔지 아느냐' 등등 KBS1TV <퀴즈! 대한민국> 상식 퀴즈에 나올 만한 문제를 들고 오셨는데, 형과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잡지식에 취미가 있어서 꽤 많이 맞췄던 것 같다(아버지의 기억은 다를 수도 있다). 참고로 네덜란드는 홀란드, 중국의 국기 이름은 오성홍기다. 아버지는 일하느라 바쁘고 기억해야 할 게 많아서인지 어제 냈던 퀴즈의 정답을 까먹으시곤 했다. 그때문에 퀴즈를 형과 내가 못 맞춰도 "에이 아버지 내일되면 또 까먹을 거잖아요"라고 말하며 아버지의 뿌듯함을 애써 가라앉히려 했다.
아버지는 이런 식탁을 기억하고 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