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점

2016년 7월 17일

by 김작가

계획 강박증이 도져서 힘든 한 주였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토요일 오후부터 서서히 증상이 완화되기 시작하여 일요일 완치 판정을 받았다(판단은 내가! 내가! 해! #전지윤 #언프리티랩스타4화)


우울증과 우울감은 다른 것인데, 난 우울감을 자주 느끼는 편이다. 그 이유는 과대해석하는 성격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예민한 성격. 좋게 말하면,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 성격. 경제적으로 말하면, 비효율적인 성격. 정치적으로 말하면, 비판과 꼬투리 잡기를 즐기는 성격.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아주 피곤한 성격이다. 그래서 친구의 장점을 잘 발견하고 또 그걸 잘 말해주는 사람인데, 문제는 단점도 크게 본다는 점이다. 난 이미 이런 단점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친구의 단점을 발견하면 '알아 알아 그건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는 단점 중에 하나일 뿐이고, 넌 그 친구의 단점을 덮을 장점을 많이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그만 그 단점에서 빠져나와 제발!' 이라고 스스로에게 살을 날리지만 곧 역살을 맞아 마음 속에 있는 시커먼 우물(영화 <탐정 홍길동> 참고)에 빠지곤 한다.


우물에서 빠져나오는 법은 간단했다. 밤 11시쯤 홍제천을 산책한다. 11시는 어떤 시간인가. 사람보다 오리가 더 많은 시간이라 인간의 꽥꽥거림에 지친 상태라면 산책에는 딱 좋은 시간이다. 인간의 꽥꽥은 듣기 싫지만 오리의 꽥꽥은 도통 뭐라고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어서 신경쓰이지 않는다. 산책을 하면서 이 생각 저 생각 그 생각 각종 무용한 생각을 한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지,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지, 저 사람은 아직도 폴더폰을 쓰네? 그럼 표준11000원짜리 표준 요금제를 쓰겠네? 어 잠깐만 내 스마트폰 요금제가 얼마짜리더라, 데이터는 얼마나 남았지, 갑자기 배가 고프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더라, 집에 토마토가 몇개 남았지? 보통은 이런 쓸데 없는 생각을 1시간 동안 한다. 그렇게 걸어가다가 고양이가 보면 '안녕 고양아' 인사를 하고 오리가 바위 위에서 옹기종기 모여있으면 사진을 찍는다. 별거없지만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면 정리가 된다. 그리고 이런 산책은 주로 금요일 밤에 하는 편이다. 금요일 밤에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감정이라는 방을 청소하는 것과 비슷하다.


방을 더럽게 유지하는 사람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는데, A타입은 더러운 걸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남에게 잔소리를 들어야만 치우거나 살기 불편해지면 치운다. 절대 더럽다고 느껴서 치우는 게 아니다. B타입은 한 번 청소를 할 때 대청소를 하는 타입이라 평일에 쉽게 청소도구를 들지 못하는 타입이다. 난 B타입이다(라고 주장핝다). 감정을 청소하는 것도 비슷해서 평일에는 산책을 하지 않는다. 산책은 내게 마음 속을 청소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산책을 하고 나면 마음이 깨끗해지고 뭐든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만능감이 생겼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더이상 산책이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우울감이 극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난세에 영웅이 등장한다고했나 동쪽에서 귀인을 만난다고했나 뜬금없이 우울감이 사라졌다. 토요일에 건대입구에서 H와 북촌만두를 먹고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H가 스쳐가며 했던 말을 듣고(무슨 말인지는 비밀) 요즘 내가 많이 부정적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인지하게 됐는데, 그 순간 내가 제자리에서 많이 벗어나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벗어나있는지를 알게 되니 마침내 GPS를 켜고 방향을 찾을 생각을 했다.


두번째, 아이패드 프로에 설치해놓았던 게임 '길건너 친구들'을 보고 H가 '이건 뭐야 해보자'라고 했는데, 사실 난 설치만 해놓고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해보니 너무 굉장히 심하게 재미있었다. H와 헤어지고 그림일기 작가인 ssnamii와 인터뷰를 마치고나니 저녁 7시. 8시에 예매해놓은 <도리를 찾아서>를 보기 전까지 1시간 동안 길만 건넜다. 불교에서는 해탈의 경지를 모든 고민과 고통이 사라지는 것으로 설명하는데 길건너 친구들을 하는 순간 해탈을 느꼈다.헤헤. 영화 <루시>에서는 스칼렛 요한슨은 몸이 가루가 되며 "I am everywhere"이라고 말하는데 가루가 되는 기분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길건너 친구들을 하니 길거리에서 마주 오는 사람들을 더 잘 피하게 됐다. 진짜다. <도리를 찾아서>는 그냥 그랬다. 물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세번째, 일요일 아침에 JTBC 뉴스룸을 3시간 동안 봤는데, 문득 요즘 내가 뉴스를 보지 않음을 눈치챘다(난 눈치가 매우 빠른 사람). 뉴스를 본다는 건 일요일에 카페에 가는 것과 비슷한, 나에게는 일종의 종교활동과 같은 것인데, 그것을 하지 않았으니 나를 많이 잃어버리고 살고 있었다과 다름아니다(무슨말이지). H와 대화를 통한 자아성찰, 길건너 친구들, JTBC 뉴스를 통해 우울감을 극복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나의 상태를 인정하는 게 첫번째.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평소의 나로 돌아가는 게 두번째. 멀리 보지 말고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기로 한 게 세번째다(정말 이런 내용이었니?). 지금까지 '뭐라도 되겠지'라는 슬로건이 모든 선택의 베이스였는데,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돈 #일) 많이 흔들렸다. 다행히 다시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


아쉽게도 길건너 친구들의 약빨은 이미 떨어졌다. 다음에는 어떤 처방전을 구해야 할지 벌써 고민된다. 눈 앞에

수학의 정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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