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

2016년 7월 19일

by 김작가

정해놓고 사는 걸 좋아한다. 카카오톡에 있는 친구 목록을 처음부터 천천히 내리며 8월에 만날 친구의 이름을 8월 1일 날짜에 적어둔다. 그리고 7월 넷째주부터 한명씩 연락을 하기 시작한다. "8월 5일 저녁 시간 가능?" 이 작업은 언뜻보기에는 영혼 없어 보인다. 하지만 방법이 기계적일 뿐, 만남에 진심이 없는 건 아니다. 오랜만에 만날 생각을 하면 당연히 기대가 되며, 특히 그 주 금요일에 약속이 있으면 월요일이 고달프지 않다. 보통 약속장소는 내가 정하니 만남에 관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총괄하는 셈이다. 이런 병적인 얘기를 아무나에게 하지는 않는다. 보통 반응이 '헉'에 이어 '왜 그렇게 피곤하게 하냐'라는 말로 자연스레 이어지다가 '이상해'로 끝맺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말한다.


"안 피곤해요. 재밌어요. 계획하는 거."


그런데 올해는 조금 다르게 말하고 있다.


"잘 안 고쳐져요. 그래서 고쳐보려고 하나씩 놓고 있는 중이에요. 다음달 약속은 안 잡고 이제 그 주 약속만 잡아요. 원래는 사고 싶은 물건이나 놀러가고 싶은 공간까지 다 적었는데, 지금은 다 지웠어요. 가끔은 두근거려요. 내가 기억해야 할 것들을 까먹을까봐 두려워서. 두근거려서 잠을 못잔 적도 많아요. 저도 원인을 생각해봤어요. 아마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을 거예요. 하나도 놓치기 싫어서. 그런데 지금은 놓치면 놓치는대로 살려고 해요. 될대로 되겠죠. 하루는 열심히 살고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살죠 뭐."


이 일기도 어쩌면 괜찮아지기 위한 하나의 행동일 수도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가진 유일한 강박은 계획짜기였다. 과거형으로 쓰긴 했지만 지금도 조금 남아있다. 남에게 도움받기를 싫어해서 웬만하면 혼자 해결하고 싶었다. 그 방법이 기록하기였던 것 같다. 좋게 말하자면 그저 열심히 살고 싶었던 거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무엇을 위해 계획을 짜고 있는 건지 몰라 그만두고 있는 중이다.


C잡지 최종면접에서 탈락 전화를 받은 날, 홍제천에서 달리기를 하며 숨을 골랐다. 그땐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는데, 왜그랬을까 생각보니 그것 또한 하나도 놓치기 싫은 내 마음의 발로였나보다. 가진 것도 없는데 뭘 그렇게 꽉 쥐었는지 모르겠다. 문자로 전해지는 '탈락'이라는 두 글자가 가진 위력은 생각보다 굉장해서 어떤 초인적인 힘마저 느껴진다. 그 단어를 본 날은 지구의 회전속도와 중력이 1.5배쯤 증가하는 것처럼 몸이 무거워지고 정신은 어지러워졌다. 그래서 수없이 계획을 짰고, 그것을 또 반복했다. 그런 루틴이 내게는 한여름의 선풍기처럼 겨우 숨쉴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선풍기 바람에 숨쉴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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