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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좋다

내 인생에 박혀있는 영화의 흔적들에 대해

by 김작가
영화는 제 7의 예술이다



중학생 때인가 고등학생 때, 아무튼 교복을 입고 친구들끼리 우르르 몰려다닐 때, 긴 머리가 어깨가 닿을 정도로 기른 채 5:5 가르마를 하셨던 미술 선생님이 그렇게 영화는 제7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제 1의 예술부터 제 6의 예술까지도 말해주셨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에는 순서가 없다. 아주 미세한 시차를 두고 발생하는 사건은 거의 동시적이다. 하지만 내게 영화는 사랑했고 이후에 알고 싶어진 것이다. 방학 때는 PD박스(위디스크와 비슷한 사이트)에서 영화를 다운 받아 하루 종일 영화를 봤다. 주로 한국영화를 봤는데, 이유는 외국 영화의 감정선을 공감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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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하굣길에는 집에 오는 길에 있는 비디오대여점을 들려 비디오를 하나 빌렸다. 오후 3시쯤 집에 도착해서 영화를 보는데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잔 적도 많았다. <마이너리티 리포트>같은 영화는 상/하로 나뉘어져있었는데, 수중에 돈이 1000원 밖에 없어서 상만 빌릴지 하만 빌릴지 고민도 했다(결론은 하만 빌렸다. 결론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일요일에 다시 학교 기숙사로 돌아가는 날에는 서점에서 무비위크나 필름2.0을 샀다. 하기 싫은 공부를 하며 학교 기숙사에 갇혀지내는 신세에 영화잡지가 유일한 낙이었다(힙합 음악도 있긴 했다). 시골에서 자라 영화관도 없었다. 기차를 타고 대구로 가야했다. 그래서 '영화관에 가는 날=기차 타는 날=여행가는 날'이라는 공식이 있었다. 영화가 재미있든 재미없든 영화관이 너무 좋고 영화가 미칠듯이 좋았다. 영화잡지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얼마나 되기 어려운 건지는 몰랐다.

'영화관에 가는 날=기차 타는 날=여행가는 날'

무비위크에서는 매호마다 배우가 실제 입었던 의상을 선물로 주는 이벤트를 했다. 그 이벤트에 딱 한 번 신청했는데 덜컥 당첨이 됐다. 하필이면 여배우 의상이다. <썬데이 서울>에서 이청아가 입었던 검도복이다. 아직도 집에 있고, 입어본 적은 없다. 다행히 검도복이라 남녀공용이다. 나중에 입는 날이 오더라도 변태취급 받을 일은 없을 것 같다. 내 인생에 있어서 영화라는 것이 얼마나 빼곡히 박혀있는지 궁금해서 이렇게 차록해본다. 가만히 <비긴어게인>영상을 보다가 또 울컥하며 영화가 너무 좋아서,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표현하고 싶어지지 않나. 딱 그런 심정이다. 상대가 생물이 아닌 무생물도 아니라는 게 좀 다를 뿐이다.


'여자친구의 매력이 뭐야?'라고 묻듯 영화의 매력을 묻는다면, 상업적이고 대중적이라는 것과 공동의 예술 활동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이게 웬 영화학과 교재스러운 답변이라고 묻을 수도 있지만 지금 답변은 이렇다.


미술이나 조각 그리고 건축에 비해 영화는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정말 지독하게 상업적으로도 만들 수 있지만, 아무도 찾지 않을 묘한 영화로 탄생될 수도 있다. 상업적으로 만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닐까?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예술의 목표에 수익에 대한 욕심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예술이냐 아니냐를 정하기엔 너무 모호하고 흐릿하다.


공동의 예술작품이라는 점 또한 독특한 특징이다. 영화는 감독만의 예술이 아니고 누구 한 사람만의 예술도 아니다. 작가라는 이름을 미술이나 소설 뒤에 바로 써도 전혀 어색함이 없지만 영화에서만큼은 어색하다. 영화작가? 감독작가? 없다. 그런 말은 없다. 오로지 작가주의 감독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 감독은 감독이고 감독이 작가주의적 성향이 있을 뿐이다. 감독이 온전한 작가는 될 수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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