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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Aug 28. 2016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세요, <8월의 크리스마스>

<8월의 크리스마스> 10년만에 본 후기

<8월의 크리스마스>를 처음 본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이 영화를 처음 봤고 오늘 두번째로 봤으니, 10년 만에 다시 본 셈이다. 그때 고민이라고는 좋은 대학교에 갈 수 있을까 정도였고 사랑을 해본 적 없었고 지금은 잘 먹고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사랑은 많이 해봤으니 느끼는 바가 조금 달라졌을까.


느끼는 점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때도 유정원(한석규)이 아버지(신구)에게 리모콘 작동법을 알려주다가 화를 내는 장면에서 울컥했었고, 지금도 그렇다.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장면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8월의 크리스마스>는 최고의 멜로였어'라고 말만 하는 사이 세부적인 내용을 거의 까먹게되어서 인상에 남지 않았던 장면을 봤을 때는 처음보는 것처럼 새로웠다. 행복했다.


그때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게된 계기도 TV를 통해서였다. <토요명화>라는 프로그램에서 봤었는데,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영화의 재미를 알게되어 이후로 한동안 계속 봤었다. 그 이후에 했던 영화들은 <프라이트너><스타쉽 트루퍼스>였던 걸로 기억한다. 영화적 지식이 없어서 어떻게 봐야하는지도 몰랐다. 지금은 영화를 많이 보다보니 다른 영화와 차이점 정도를 비교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에게 비디오 작동법을 알려주는 정원. 두번째 보는 영화라서 더 슬픈 장면.


<8월의 크리스마스>는 대사보다는 비언어적 메시지가 더 많다. 행동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예를 들면, 후반부가 되어 유정원이 주변의 흔적을 하나둘씩 정리하는 장면에서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다. 설거지를 한 뒤, 그릇이 종류별로 가지런히 분류되어있다. 줌을 많이 쓰지 않는 <8월의 크리스마스>의 특성상 그릇들을 당겨서 찍는 의도는 다분히 유정원의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유정원은 아버지에게 리모콘 작동법을 알려주는 등 자신이 죽기 전 해야 할 것들을 하나둘씩 정리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촬영기법의 특징으로는 줌의 최소화라 할 수 있다. 요즘 영화들을 보면 A가 말하면 A 얼굴을 클로즈업, B가 말하면 B얼굴을 클로즈업하는 등 클로즈업을 남발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감정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겠지만, 꼭 얼굴을 화면에 꽉 차게 잡아야 할 필요도 없고, 얼굴로만 전달해야 한다는 법도 없다. 그 사람의 손이나, 사물을 통해서도 전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얼굴로 하면 쉬우니까 그렇게 한다. 보는 사람이나 찍는 사람이나 그게 쉬우니까.



<7번방의 선물>을 본 사람들은 말한다. "그 영화는 멱살 잡고 울어! 울란 말이야! 라고 말하던데?" <7번방의 선물>뿐만이 아니라 <연평해전>도 마찬가지였고, <국제시장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영화계에는 좌파들만 가득해서 영화를 편향적으로 평가한다며 비평가가 아닌 비편가라고 비난하는데, 그건 틀려도 한참 틀린 말이다.


장르마다 주로 다루는 감정이 다르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경우에는 슬픔을 다룬다. 슬픔을 어떻게 다루느냐를 보면 비평가들에게 혹평받은 영화와 아닌 영화의 차이는 극명하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가장 많이 웃는 사람은 죽음을 앞둔 유정원이다. 그렇지만 그가 웃는 모습을 보는 관객들은 오히려 슬픔을 느낀다. 이런 차이다. 못 만든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계속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안타까운 상황을 극대화시킨다. 절제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눈물이 쏙 들어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절제미는 공간을 다룰 때도 돋보인다. 많은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인물을 따라가는 방식을 취하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는 공간에 놓여있는 방식을 택한다. 많은 장면들이 이렇게 촬영되었다. 카메라가 공간에 있다. 그리고 유정원이 들어오고, 김다림이 들어온다. 둘이 얘기를 하다가 다시 사라진다. 마치 영화의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 장소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방식은 유정원의 대사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유정원이 초등학교 운동장을 보며 언젠가는 우리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 운동장을 보여주는 장면은 영화에서 총 두 번 등장하는데, 첫번째는 유정원이 죽기 전 여름 운동장이었고, 두번째는 죽은 후 겨울 눈덮인 운동장이었다.



대사가 적다고 말했지만 밀도는 단단했다. 놀라게 만드는 장면이 한 두 장면이 아니었는데, 가장 좋았던 장면은 김다림이 유정원의 사진관에 찾아와 잠깐만 소파에 앉아서 쉬겠다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김다림은 몇마디 나누다가 '나 이제 잘거니까, 말시키지마요'라고 말하며 눈을 감는다. 옆에서 같이 얘기하던 유정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돌아간다. 그리고 3초 뒤 김다림이 묻는다. "근데 아저씨, 오늘은 왜 반말해요?" 이 장면이 왜 좋았냐면, 누군가를 좋아해본 사람만이 아는 감정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좋아하면 계속 생각한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잔다고 눈을 감았지만 유정원을 계속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외에서 정말 좋았던 장면을 꼽자면 본인의 제삿상에 올릴 사진을 찍고 싶다고 다시 찾아온 할머니,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는 유정원의 오토바이 소리를 듣고 미소짓는 김다림, 어두운 밤 골목에서 김다림이 낀 팔짱에 당황해서 할말을 잃은 유정원. 정말 너무 많다. 2시간 동안 잽을 날린 것 같지만 사실 뜯어보면 모두 어퍼컷이었다.



깊게 들여다볼수록 좋아지는 영화가 너무 좋다. 단순하지 않은 영화가 좋아서, 사람도 그런 사람이 좋다. 그리고 나를 보이는 그대로 판단하지 않고 바라볼줄 아는 사람이 좋다. 내가 그러하듯이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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