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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Sep 17. 2016

<고산자>, 조선시대에서 온 영화

옛스럽다. 촬영도 편집도.

PART1. 영화는 유희적 대상

당신에게 영화란 어떤 의미인가. 어떤 커플에게는 적당히 즐길만한 놀거리일 것이고, 1000만이 넘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영화관으로 가는 누구에게는 그저 '영화'일 뿐일 수도 있다. 맞다. 영화는 영화다. 영화를 심하게 좋아하는 친구A에게 헛소리하지 말라며 핀잔을 준 적이 있나. A는 말한다.


"그 영화 오프닝 봤어? 고층 빌딩에서부터 지하까지 카메라가 주인공을 따라가며 찍는데, 그게 영화의 내용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오프닝인 것 같아. 나락으로 떨어지는 내용이잖아."

그 영화가 이 영화다

누군가에게 영화는 놀이인 것처럼 A에게도 영화는 놀이다. 단지 노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다른 아이들이 곤충은 곤충이라며 채집에 집중할 때, 누군가는 곤충의 생김새를 들여다볼 줄 안다. 누군가가 영화는 영화라며 한 손에는 팝콘을 들고 연인과 손을 잡고 영화를 보는 것도 그들만의 놀이지만 감독의 연출과 편집,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 뜯어보는 것 역시 놀이라는 것이다. 둘 중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영화를 즐기는 방법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고, 영화를 비평하는 것도 그 중 하나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지적허세가 아니라.


그리고 대상이 무엇이든 경험이 쌓일수록 경험적 연령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영화를 1000편 본 사람과 1편 본 사람이  <고산자>를 보는 경험은 다를 수밖에 없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만화나 장난감을 이제는 즐기지 않는 것처럼 <고산자>를 좋아할 사람이 있고 안 좋아할 사람이 있다. 아, 물론 경험의 차이라 생각하지 수준의 차이는 아니라고 본다.


PART2. 메이드 인 조선


<고산자>는 다른 의미로 놀기에 좋은 영화다. 한마디로 깔 게 많은 영화다. 우선 차승원의 연기. 차승원은 새로운 시도를 한다. 김정호를 허당끼가 있는 인물로 나타냈다. 항상 웃는 눈, 쉬어보이는 사람, 웃음이 헤픈 사람으로 캐릭터를 연기했으나 차승원과 어울렸다고는 할 수 없다. 차승원의 연기를 보고 연기 정말 잘하네 라며 생각한 적은 별로 없지만 그렇다고 별로였던 적도 없었다. 하지만 <고산자>에서 보여주는 김정호 연기는 그야말로 누가봐도 연기같았다. 배우는 자신이 가진 외모를 벗어나 연기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문근영이 <어린 신부> 이후에 국민여동생으로 벗어나려 애를 썼지만 결국 실패한 것은 문근영의 연기가 부족했다기 보다는 다른 역할을 하기 힘든 외모 때문이었다. 한가인도 마찬가지다. 오똑한 코, 큰 눈은 현실세계의 사람들을 연기하기에는 비현실적이다. 연기 문제도 있었겠지만. <고산자>에서 차승원은 과잉된 코믹 말투로 관객들을 극 속에 빠지지 못하게 만들었다.

왜 이미지만 있고 이야기는 없었을까
피피티처럼 지나가버린...

친구는 <고산자>의 화려한 절경이 가장 기대된다고 말했다. 말그대로 영화는 합천, 제주도, 백두산 모두 보여준다. 말그대로 보여준다. 스토리 없이 마우스 왼쪽을 누른 것처럼 슬라이드처럼 지나간다. 차라리 CG를 했다면 제작비는 아낄 수 있지 않았을까. 2시간짜리는 영화는 대한민국의 절경을 보여주는데 시간을 투자하려니 아까웠나보다. 그렇다고 김정호와 딸의 이야기나 지도에 대한 사랑이 강한 몰입감을 주지도 않는다. 전국을 다니며 만는 사람들 중에 분명 매력적인 캐릭터도 있을 텐데 LG G5의 듀얼카메라 처럼 상호보완하지 않고 따로 놀긷에 바쁘다.


정형화된 앵글, 평면적인 캐릭터, 쓸데없이 프레임만 차지하는 유머들. 이외에도 눈을 질끈 감고 싶을 만큼 영화는 옛날 문법에 머물러있었다. 마치 강우석 감독이 조선말기에 만든 영화를 이제 개봉하는 것 같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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