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작가 Oct 03. 2016

성장과정(2)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판다는 말을 좋아하지만 그 말을 어디서 했는지는 모른다. 스피노자가 말했다는 사실은 알지만, 어떤 책에서 말했는지 알지 못한다. 난 그 말을 영화평론가 이동진으로부터 들었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습득하는 지식들이 많다. 세상에 지식이 점점 팽창될수록 나는 혼란스럽다. A부터 Z까지 모든 것이 중요한 정보 같은데, 고민하는 와중에 A-1이 생기고 A-2가 생긴다. 그래서 누군가가 습득한 정보를 습득하는 방법을 택하고는 한다. 특히 TV프로그램에는 많은 정보가 들어가는 그 정보에는 전문성과 오락성이 적절히 섞여야 하기 때문에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은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내가 TV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다. 유익함과 재미가 적절히 배합된 정보는 어디에서건 유용하다.


하지만 그렇게 배운 지식은 겉핥기에 불과해서 깊에 들어갈 수 없다. 이력서에 무수히 적었던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판다'라는 말은 스스로에 대한 변명과도 같은 말이다. 여전히 나는 넓게만 파고 있으면 깊게 파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렵게 쓸 줄 알아야 쉽게도 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인문학을 공부했고..."


인문학을 공부했다는 말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한때 집중하듯이 접한 인문학 콘텐츠는 사실 기본적인 소양에 불과했다. 미술사에 대해 아는 척하려 하지만, 여전히 '인상파의 출현은 카메라의 등장 때문이다' 정도 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스무살 초반의 인문학적 지식이 스무살 중반을 넘어 후반에 이를 때까지 학문간 융합은 커녕 괴사 상태에 이르렀는데, 이런 상태의 책임은 게으름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변의 친구들은 다들 그정도 밖에 모르니 너무 자괴감 갖지 말라고 하지만, 어쨌든 자기소개서에 적은 휘황찬란한 말들은 거짓에 가까우니까.

작가의 이전글 성장과정(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