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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Mar 09. 2017

이해냐 포기냐, <아티스트: 다시태어나다>

영화 감상문

"그럴 수 있지"


어떤 말에도 관대하게 이해를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6년 사귄 애인을 두고 바람을 피우다 걸린 실화를 들으며 살짝 놀란 뒤 말을 이었다. "그럴 수 있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그 친구의 말투는 어떻게 보자면 관대했으나 안 좋게 보면 답답하기도 했다. 지금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친구는 이해한다기보다는 이해를 포기하는 편에 가까웠다. "이 세상은 결국엔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니, 무엇인 진짜이고 가짜인지 알고싶은 열의가 없다"는 것이 그 친구 삶의 기본 명제였다. 마치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이하 '아티스트')에 나오는 박재범(박정민)처럼 말이다.


<아티스트>에는 두 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덴마크에서 동양화를 배우고 온 화가 지젤(류현경) 그리고 한 유명 갤러리의 관장 박재범이다. 어느날 박재범의 눈에 무명 화가 지젤의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박재범은 지젤과 계약을 하고 모든 작품을 사드리고 개인전까지 해주겠다고 한다. 이제 유명해질 일만 남은 줄 알았던 지젤은 불행히도 심장마비로 죽는다. 하지만 '라자루스 증후군'으로 하루 만에 다시 살아난 지젤. 하지만 그녀가 잠시 죽었던 사이 세상은 변했다. 그녀가 죽고, 모든 언론은 지젤의 죽음을 안타까운 천재 작가의 죽음으로 보도하며, 신화화한다. 그의 유작은 날개돋힌듯 팔린다.



남자와 여자가 주연인 대부분의 영화와는 달린 이 영화의 장르는 로맨스라고 할 수 없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감정이 사랑이고, 둘을 결국 성장시키는 것이 사랑인 로맨스 또는 로맨틱 코미디와는 달리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티스트>에서는 그리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물론, 영화 초중반까지 이어지는 박재범과 지젤의 관계는 피식 웃음짓게 만들지만 주된 감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티스트>는 무슨 영화인가.


<아티스트>에 대해 말하기 전에 다른 드라마나 영화가 좋은 비교가 될 것 같다. 의학을 다루는 메디컬 드라마, 법정이 배경인 법정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가 있다. 그 드라마 속에서는 법이 무엇인고 정의가 무엇이며 의사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본질적인 것이 대사를 통해 드러난다. 장르를 구분짓는 것은 주인공들이 주로 연기를 하는 장소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무엇을 말하려하는지가 장르 구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면 <아티스트>는 도대체 무슨 장르인가. 정답은 언제나 그렇듯 극장에서 찾자.


영화는 좋은 것 이상이었다. 특별했으며, 이런 영화를 기다렸다고 말하고 싶다. 난 한국영화에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저 일상 속에 흩어진 다양한 소재들을 골고루 다루어주길 바랄 뿐인데,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에서는 실망하기 일쑤였다. 장진의 <아는 여자>이후로 기억에 남는 로코물이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8월의 크리스마스>이후에는 그것을 넘는 멜로가 나오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티스트>가 흥행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좋은 영화는 흥행하기 힘들다. 몇몇 씨네필들만 찾는 아트하우스에 걸려 하루에 한번이나 두번 정도 상영할 뿐이니까. 하지만 좋은 영화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영화를 본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영화의 흔적은 아직 선명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지젤과 박재범이 처음 만났을 때였다. 박재범이 먼저 말한다.


"그림 재밌던데요?"

"제 그림이 뭐가 재밌어요?"

"아니, 오해하셨나본데, 좋다고요. 작품."


이때 박재범은 창가 쪽에 있는데, 지젤이 그를 바라볼 때 창가에서 햇살이 쏟아진다. 여기서 햇살이 무명작가에게 희망의 상징인 것은 너무 쉬운 장치이다. 하지만 놀라웠던 건, 그때 박재범을 담고있는 화면이다. 헤드룸(촬영할 때, 머리 위에 비어있는 공간)이 없이 핸드헬드로 찍어 흔들린다. 지젤이 만난 것은 희망이기는 했으나 매우 불안정한 상태의 희망이었던 것이다.



이 외에도 비교적 쉬운 메타포가 많이 있었다. 그것들은 대화와 상징물로서 나타났는데, 영화를 보고 난 뒤 해석을 유희로 즐기는 관객들이라면 분명 <아티스트>는 만족스러운 영화가 될 것이라 예상한다. 그리고 처음에 언급했던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이 이해가 아닌 이해의 포기에 가깝다는 말에 대해 설명이 없었다. 그 말은 박재범이 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박재범은 작품을 평가하는 일을 한다. 죽은 작품을 살리고, 산 작품을 죽이기도 한다. 지젤은 자신의 작품 의도에 대해 묻지도 않으면서 마음대로 평가하는 박재범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거 거짓말이잖아요."

"지젤씨. 당신이 유머를 막 했는데, 아무도 안 웃어. 그럼 그거 유머야 아니야? 아니죠?"


박재범이 생각하는 예술 작품이라는 건 만들어지는 것에 가깝다. 그가 정말 예술에는 본질이 없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의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은 이해일까, 포기일까. 그 답은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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