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작, <눈길>

우리에겐 필요한 영화가 있다

by 김작가

주말에 뭐했냐는 친구의 질문에 영화를 봤다고 말하면, 곧 따라오는 질문. "그 영화 재밌어?"

그 말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재미로 나누어지는 영화에 들어갈 수 없는 영화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은 필요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눈길>은 필요한 영화다.


귀향 vs눈길

위안부 소재 영화는 전에도 있었다. 작년에 개봉했던 <귀향>은 적은 예산으로 약 358만 명을 동원했다. 유명 배우 하나 없었던 영화가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만들어져야만 했던, 필요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귀향>의 아쉬운 점

●자연스럽지 못한 연기

●매끄럽지 못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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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할 수 없는 연기

영화를 봤던 관객들 역시 많이 공감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귀향>을 보며 분노하고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그리 잘 만든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귀향>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눈길>에서 기대하며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알았다. 이 캐릭터는 누구도 소화하지 못할 것 같다.


위안부 피해자는 소녀이고, 소녀 때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당한다. '지나치게 굴곡진 삶을 겪은 소녀의 인생을 연기할 수 있는 어린 배우가 있을까.'그런 생각이 들었다. <귀향>과 마찬가지로 <눈길> 역시 두 개의 이야기가 묶여있는 구성을 보여준다. 할머니가 된 현재, 소녀였던 과거, 두 가지 이야기가 종분 할머니(김영옥)의 눈에 보이는 친구 영애의 환시로 이어진다. 괴불 노리개가 <귀향>에서 과거-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쓰였던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있을 만한 주변 인물

가끔씩 공분을 일으키는 영화들은 실수를 하곤 한다. 현실에서는 없을 것 같은 극도로 무례한 캐릭터를 배치해서 주인공을 괴롭히게 만든다. 예를 들면, 최선을 다해 적극적으로 불친절한 동사무소 직원 같은 경우다. 그런 장면을 보면, '아... 꼭 저렇게까지 해야 했을까'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선과 악으로 나눈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일상을 반영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 남자와 그 여자에겐 언제나 사정이 있고, 인과가 있는 법이다. 캐릭터의 악이 너무 강하면 관객들은 몰입하지 못하고 스크린에서 튕겨나간다. 다행히 <눈길>은 충분히 공감할 만한 불친절한 캐릭터를 보여주어 몰입을 방해하지 않았다. 할머니를 적당히 귀찮아하다가 나중에는 도와주던 동사무소의 캐릭터가 특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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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의 무게

자연스레 어린 종분과 할머니 종분의 연기가 비교될 수밖에 없는데, 할머니 종분을 연기한 김영옥의 연기를 보면 두 글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배우'


달관한 연기, 참는 연기, 화내는 연기, 답답해하고, 속상해하는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영하는 그런 감정들을 연기해내는 김영옥의 연기는 <눈길>이 중심을 단단하게 이끌어나갔다. 어쩔 수 없이 영애 역의 김새론과 어린 종분 역의 김향기의 연기가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누구도 쉽게 연기할 수 없는 굴곡이 아닌가. 김새론과 김향기가 못했다기보다는 누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그것은 곧 서글픔으로 이어졌다. 배우가 없다는 안타까움이 아닌, 할머니들이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이런 영화를 만들어준 제작진과 스태프 그리고 연기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특히, 엔딩 시퀀스는 몇 개월 동안 봤던 수많은 영화의 엔딩을 지워버리게 만든 최고의 시퀀스였다고 생각한다.



김작가

글로 벌어 먹고 살고 싶은, 글로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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