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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Mar 14. 2017

이제 시작, <눈길>

우리에겐 필요한 영화가 있다

주말에 뭐했냐는 친구의 질문에 영화를 봤다고 말하면, 곧 따라오는 질문. "그 영화 재밌어?"

그 말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재미로 나누어지는 영화에 들어갈 수 없는 영화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은 필요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눈길>은 필요한 영화다.


귀향 vs눈길

위안부 소재 영화는 전에도 있었다. 작년에 개봉했던 <귀향>은 적은 예산으로 약 358만 명을 동원했다. 유명 배우 하나 없었던 영화가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만들어져야만 했던, 필요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귀향>의 아쉬운 점

●자연스럽지 못한 연기

●매끄럽지 못한 편집



감당할 수 없는 연기

영화를 봤던 관객들 역시 많이 공감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귀향>을 보며 분노하고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그리 잘 만든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귀향>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눈길>에서 기대하며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알았다. 이 캐릭터는 누구도 소화하지 못할 것 같다.


위안부 피해자는 소녀이고, 소녀 때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당한다. '지나치게 굴곡진 삶을 겪은 소녀의 인생을 연기할 수 있는 어린 배우가 있을까.'그런 생각이 들었다. <귀향>과 마찬가지로 <눈길> 역시 두 개의 이야기가 묶여있는 구성을 보여준다. 할머니가 된 현재, 소녀였던 과거, 두 가지 이야기가 종분 할머니(김영옥)의 눈에 보이는 친구 영애의 환시로 이어진다. 괴불 노리개가 <귀향>에서 과거-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쓰였던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있을 만한 주변 인물

가끔씩 공분을 일으키는 영화들은 실수를 하곤 한다. 현실에서는 없을 것 같은 극도로 무례한 캐릭터를 배치해서 주인공을 괴롭히게 만든다. 예를 들면, 최선을 다해 적극적으로 불친절한 동사무소 직원 같은 경우다. 그런 장면을 보면, '아... 꼭 저렇게까지 해야 했을까'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선과 악으로 나눈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일상을 반영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 남자와 그 여자에겐 언제나 사정이 있고, 인과가 있는 법이다. 캐릭터의 악이 너무 강하면 관객들은 몰입하지 못하고 스크린에서 튕겨나간다. 다행히 <눈길>은 충분히 공감할 만한 불친절한 캐릭터를 보여주어 몰입을 방해하지 않았다. 할머니를 적당히 귀찮아하다가 나중에는 도와주던 동사무소의 캐릭터가 특히 좋았다.



김영옥의 무게

자연스레 어린 종분과 할머니 종분의 연기가 비교될 수밖에 없는데, 할머니 종분을 연기한 김영옥의 연기를 보면 두 글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배우'


달관한 연기, 참는 연기, 화내는 연기, 답답해하고, 속상해하는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영하는 그런 감정들을 연기해내는 김영옥의 연기는 <눈길>이 중심을 단단하게 이끌어나갔다. 어쩔 수 없이 영애 역의 김새론과 어린 종분 역의 김향기의 연기가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누구도 쉽게 연기할 수 없는 굴곡이 아닌가. 김새론과 김향기가 못했다기보다는 누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그것은 곧 서글픔으로 이어졌다. 배우가 없다는 안타까움이 아닌, 할머니들이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이런 영화를 만들어준 제작진과 스태프 그리고 연기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특히, 엔딩 시퀀스는 몇 개월 동안 봤던 수많은 영화의 엔딩을 지워버리게 만든 최고의 시퀀스였다고 생각한다.



김작가

글로 벌어 먹고 살고 싶은, 글로벌 작가.

그의 글이 궁금하다면 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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