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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Mar 27. 2017

혼자 하는 싸움, <원라인>

★★★ 임시완 씨, 불쌍한 악당 그만 괴롭혀요

흥행하는 범죄 영화에는 네 가지가 있다.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치밀한 전략

마냥 착하지는 않지만 정의로우며 선천적으로 뛰어난 두뇌를 가진 주인공

그런 주인공을 닮을 악역

주인공 외에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


치밀한 전략은 시나리오를 말하는 것이고, 나머지 세 개는 모두 캐릭터에 관한 것이다. 범죄 영화에서는 캐릭터가 정말 중요하다. 위에서 언급한 네 개 중 <원라인>은 똑똑한 주인공 '민대리'(임시완)를 통해 치밀한 전략과 그 전략을 실행하는 캐릭터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나머지 두 개는 성공시키지 못했다.


박실장은 민대리에게 너무 쉬운 상대다.


1. 너무 약한 악역

1-1. 박실장

악역인 '박실장'을 연기한 박병은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의 연기는 인상 깊었다. 박병은은 박희순과 박성웅의 모습이 절묘하게 보이는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박성웅이 <신세계> 이후 계속 자기복제를 하긴 했지만). 문제는 '민대리(임시완)'라는 캐릭터에 비해 박 실장의 능력치가 애초에 너무 낮았던 것이다. 그가 가진 것은 오로지 돈과 야망뿐이고 능력 있는 부하조차 없었다. 두뇌를 가진 민대리와 민대리를 도와주는 신의 있는 능력자들에게는 게임이 되지 않았다. 무슨 싸움이든 압살 하면 재미없다.


박 실장과 민대리는 처음에는 같이 편이었다. 민대리가 처음 취직한 대출사기단의 상사가 박 실장이었다. 야망이 컸던 박 실장은 큰 결심을 하고 다른 길을 가는 캐릭터로 나오는데, 그조차도 그렇게 잔혹하게 보이지 않는다. 박 실장은 작은 사기단의 대표가 아니라 큰 회사의 대표가 되고 싶었을 뿐이니까. 영화에도 나오지만, 민대리나 박 실장이나 서민들을 상대로 사기 친 건 매 한 가지다.


정말 우리가 하는 일이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민대리)


이동휘가 확실한 치트키인 게 맞긴 한데...


1-2. 송차장

박 실장을 도와주는 송차장(이동휘) 역시 약하긴 마찬가지다. 송차장은 신입이었던 민대리에게 실력으로 밀렸다. 도덕심마저 없어서 몰래 돈을 빼돌리는 등 능력 없고, 부패한 캐릭터로 나오는데, 문제는 그가 <원라인>의 가장 큰 코믹한 캐릭터라는 점이다.


코믹을 담당하는 캐릭터가 악역의 부하로 나오면, 악역이 등장할 때 분위기가 더 밝아진다는 단점이 있다. 물론, 이동휘라는 치트키는 해당 신을 살리는 효과를 확실히 주지만, 영화 전체를 살리진 못한다. 오히려 둘의 대결 구도를 흐릿하게 만들어 버려, 부작용으로 남았다.


이러한 이동휘의 캐릭터는 본인에게도 고민이 될 것 같다. 이동휘는 <응답하라 1988> 이후에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만, 분위기를 살리는 코믹한 캐릭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심>에서 보여준 부패한 변호사이나 <공조>의 범죄를 저지르는 탈북자 역할은 그의 필모그래피를 다양하게 하려는 시도였지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임시완은 원톱이 되는 배우임을 보여주기는 했다. 영화에 힘이 없는 건 임시완 연기 때문이 아니다. 캐릭터가 빈약해서 그렇지.


2. 주인공이 한 명이다

2-1. 범죄 영화는 멜로 영화

범죄 영화는 선역과 악역, 두 명이 끌고 가는 영화다. 그 둘의 두뇌싸움이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준다. 그만큼 범죄 영화에 있어서, 만만치 않은 악역이란 중요한 부분이다. 세계적인 추리소설 셜록홈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셜록홈스만큼이나 천재적인 모리아티가 있기에 긴장감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은 멜로 영화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멜로 영화에서는 남녀(남녀가 아닐 수도 있고)가 이야기를 끌고 간다. 둘의 사랑, 이별, 다툼, 재회의 과정을 둘의 감정으로 긴장감을 유지한다. 범죄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이 이길 것임을 알면서도 어떻게 이길까, 복수의 타이밍 등을 통해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하고 그 과정을 궁금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원라인>에서는 민대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간다. 혼자서 당기는 끈은 팽팽해질 수 없다. 그러니 이건 임시완의 연기 문제가 아니다. 긴장감은 혼자서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태씨를 연기한 박정환의 연기가 좋아서 감독이 분량을 늘렸을 것 같다.


2-2. 유일했다, 기태 씨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현실감을 잊고 스크린에 빠지게 된다. 한순간에 영화에 빠져든다는 것은 캐릭터 중 하나에 감정적으로 이입을 한다는 것이다. 그게 반드시 주인공이지는 않아도 된다.


좋은 영화란 무엇일까. 난 모든 인물이 주인공이 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원라인>에도 그런 인물이 없는 건 아니다. 기태 씨를 연기한 박종환이 있다.


말할 때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한 때 건달 유망주였다. 생각보다 몸이 약하다. 기태에 대한 세 가지 정보다. 이 세 가지 정보를 통해 기태의 살아온 배경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보이는 장면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도 역시 연출 능력이다.


민대리의 편에 있는 '홍대리(김선영)', 그림을 그리는 혁진(박유환) 등, 인물의 사소한 습관이나 행동을 통해 숨겨진 이야기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들려줄 수 있었을 텐데, 많은 캐릭터에 비해 캐릭터 설정이 디테일하지 못했다.


<반지의 제왕>의 주인공은 프로도였겠지만 우리는 간달프, 김리, 아라고른, 레골라스를 함께 기억하고 있다. 캐릭터 하나하나는 영화를 떠받치는 부력으로 작용한다.



'김 작가의 인터뷰 시리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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