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by 김작가

그에게

맘이 시릴 땐 글이 조금씩 쓰곤 했어요. 그럼 조금 나아질 거예요, 저처럼. 힐링이라는 말이 유행했을 때가 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힐링이라는 말보다 위로가 더 좋아요. '힐링'이 등장했을 때부터 스쳐 지나갈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영어가 가지는 가벼움 때문이기도 했고, 여기저기서 힐링을 명사와 형용사로 혼용하며 무자비하게 소비했기 때문이에요. 말도 많이 쓰면 닳아요. 저는 이미 닳아버린 말을 쓰는 게 싫어, 힐링 대신 위로라는 말을 씁니다. 말맛이 좋고, 듣는 순간 정말 위로가 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에요. 아마 이유는 이것뿐, 별다른 건 없어요. 오늘따라 이렇게 위로라는 말을 꺼내고 싶은 이유는, 지금 제게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이겠죠.

사람의 마음은 언제, 무엇 때문에 시릴까요. 최근 전 맘이 시리다 못해 아렸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 예를 들면 힙합이나 영화 같은 것들, 어쩌면 그것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아니라 '좋아하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좋아한다고 말해왔던 것들에 대해 잘 이야기할 수 없을 때, 전 마음이 비어버리곤 해요. ‘내가 겨우 이 정도밖에 알지 못했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좋아하는 것이 곧, 잘 아는 것'이라는 공식이 진리가 아닌 이상 저에겐 아무런 죄가 없겠죠. 우리나라에서는 독서나 영화에 대해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가 종종 그래요. 아마도 문화생활에서조차 반드시 뭔가를 얻기를 바라는 그릇된 강박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 읽는 걸 좋아한 것만으로 충분해요. 고은의 시가 가지는 특성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고, 김훈의 문체에 대해 분석할 필요가 없어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겠죠. 촬영 방식과 카메라 앵글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정확히는 필요가 없는 건 아니고 그것은 그저 본인의 방식일 뿐이 거겠죠. 본인이 문화를 소비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 그 방식을 남에게 주입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말이죠. 그래서 오늘도 전 영화를 그냥 봤고, 내일도 그냥 볼 생각이에요. 오늘 밤은 마음이 시려서 바람이 차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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