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는 평단과 관객의 사랑을 골고루 받은 보기 드문 영화입니다. '사랑=흥행'이라는 공식만 버린다면요. 천우희라는 배우에게는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뜻깊은 영화이기도 하죠.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사과를 하는데...왜 도망가야 하죠?'와 같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이기적인 어른과 세상을 꼬집는 대사를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한공주>를 본 많은 사람들이 감독이 영상으로 만든 메시지를 통해 전하는 바를 충분히 알았을 테니까요.
저는 SBS의 인기오디션 프로그램인 <k팝스타>가 많이 떠올랐습니다. 오디션프로그램을 많이 그리고 자주 챙겨보지는 않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꼭 보는 프로그램이 <K팝스타>입니다. 많은 오디션프로그램이 나타나고 사라졌지만 여전히 <K팝스타>는 시청률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k팝스타>가 방영되고 나면 뛰어난 실력에 대한 극찬에 관한 기사도 있지만 간혹, 아니 이제는 매 시즌 오디션 참가자의 과거에 뉴스가 나옵니다. 누구라고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한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자신은 피해자이며 오디션에 나오는 사람은 피의자'라고 요약되는 게시물은 각종 연예매체가 퍼나르는 루머의 진원지입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처벌은 온당해야 한다는 등의 법적 문제를 거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루머가 퍼질 때마다 연예매체는 진실도, 사실도 아닌 사건 자체를 보도합니다. 뉴스를 제 3자로 그 사건을 관전합니다. 그 뿐입니다. 사건의 진실 따위에는 관심 갖지 않는 게 연예매체입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연예매체들이 보도하고 싶었던 건 사람들의 진실이 아니라 욕망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삶이 몇 줄짜리 기사의 단신으로 보도 될 수는 없겠지요. <한공주>에서 한공주가 흘렸던 눈물과 아픔에 대해 '최소한'언론사라면 그렇게 쉽게 접근해서는 안 될 겁니다.
<k팝스타>시즌3에서는 한 참가자가 결국 소리소문도 없이 하차했습니다. 정말 그 학생이 가해자였는지, 피해자였는지는 어떤 언론사에서도 말하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한공주가 외롭게 싸울 때, 아니 도망갈 때 손 내밀기는커녕 떠밀고 방관하던 어른들을 보니, 지금의 대한민국 연예언론들이 떠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