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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고작 여자에 약한 남자들일 뿐

<우리 선희>에는 언제나 남자와 여자라는 주인공이 나온다

by 김작가

이 글을 읽는 남자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얼마나 여자 앞에서 약한가. 특히, 여자 중에서도 예쁜 여자. 여자의 애교에 곤란하던 부탁이 너무도 쉬워지고, 불가능하던 일이 가능해지는 경험을 한번쯤 해봤으리라. <우리 선희>에 나오는 남자들은 다 그런 남자들이다. 우리들의 이야기며 일상의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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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남자, 문수(이선균). 이 남자는 선희(정유미)와 오래 사겼다. 얼마나 오래 사겼는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학교를 휴학하고 오랫동안 잠적(선희는 잠적이 아니라고 한다)을 하고 학교에 우연히 들린 선희와 만나 낮술을 마신다. 그리고 정말 사랑했다며, 우리가 왜 헤어진거냐며 진상을 부린다. 한순간은 잊은 적 없었다고 말하는 그 모습에는 한순간의 딜레이도 없다. 과연 진심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이 남자는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 선희는 교수의 추천서를 받으러 왔지만 자신을 보러 학교에 나타났다고 말하고 다닌다. 궁궐에 있다고 전화 너머로 말하는 선희의 말에 '창경궁'에 있음을 단번에 알아채는 걸 보니 오래 사귀귄 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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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남자, 재학(정재영). 이 남자는 집에 나왔다. 아내는 다른 곳에 있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 특별히 하는 일은 없어보이지만 만나기 싫은 사람이 앞에서는 바쁜 척을 한다. 딱히 하는 건 없고 그냥 '뭐' 한다. 이 남자 역시 선희를 마음에 두고 있다. 후배인 문수가 급하게 찾을 때는 "왜 귀찮게 해"라며 집에서 혼자 성질을 부리다가 선희와는 은글슬쩍 스킨십에 키스까지 한다. 선희가 "하고 싶지?"라고 불을 지피자 활활타오르는 걸 보니 기다리긴 기다렸나보다. 잘도 탄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남자는 가정이 있다. 술과 여자 앞에서 무너지는 쉬운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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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남자, 최교수(김상중). 중년의 로맨스에 설렘을 느끼며 기분 좋아라 한다. 오랜만에 학교에 들린 선희(정유미)가 추천서를 부탁하자 써주긴 하는데 내용이 영 시원찮다. 술 한번 먹고 "영원히 니 옆에 있고 싶다"며 느끼한 멘트를 날린다. 하루 아침에 '내성적이고 조용하다'라고 적힌 추천서는 '이 인재가 실패할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가져본 적이 없다'는 식의 현란한 문장으로 탈바꿈한다.


홍상수 감독이 작품을 통해 꾸준히 보여주는 건 인간 군상의 찌질함이다. 홍상수 특유의 롱테이크와 줌인, 줌아웃의 클래식함이 더 찌질함을 돋보이게 한다는 건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듯 싶다. 찌질함을 나쁘게만 볼 건 아니다. 찌질의 유의어는 인간미니까. 사실 남자들이 이렇다. 수컷과 암컷을 대할 때의 말과 행동이 다르고 자의적 해석을 잘한다. 남자만 만나면 여자 얘기 혹은 여자 얘기를 하기 위해 남자를 만나는 식이다. 세 남자는 선희(정유미)를 '조용하고 내성적이지만 안목이 있고 용감하고 가끔은 또라이 같다'라고 공통적으로 말한다. 마치 짠듯이.


사람 보는 눈이 다 비슷한가보네

창경궁을 남자 셋이 걸으며 하는 이 말은 남자의 속성이거나 사람의 속성이다. 다 비슷비슷하다. 사람의 보는 눈이 비슷한 건 실제 사람들이 가진 것도 비슷비슷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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