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의 안녕

by 김작가

안녕의 안녕

음악가 존 케이지는 피아노 앞에 앉아 4분 33초 동안 아무 연주도 하지 않았다. 음악을 듣기 위해 모였던 청중들은 그 시간 동안 가만히 '침묵'을 들어야 했다.

<무한도전>에서 길은 헤어졌던 연인에게 편지를 남겼다. 한 장의 편지에는 단 두 단어만 적혀있었다.



안녕

안녕



글은 글자들의 집합체다. 단어들을 어떻게 나열하느냐에 따라, 글의 색깔과 방향이 달라진다. 글은 글자로 이루어지지만, 글자만으로 완성될 수는 없다. 채우면서 시작되는 글쓰기는 최종적으로 덜어내며 완성된다. 즉, 여백으로 완성된다.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어떻게 나열하느냐만큼 그 사이의 공간을 두는 것도 중요하다. 하얀 모니터를 디자인하는 것이 웹디자인이고, 빈 방을 디자인하는 것이 인테리어라면, 아무 글자가 없는 빈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 글을 쓰는 일인 것 같다. 채우는 것만큼 덜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문득 느꼈을 때, 난 그토록 채우려고 했던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고 부끄러웠다.

길이 썼던 편지는 여백으로도 채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처음 만났을 때 건넸던 인사 '안녕'과 헤어질 때 했던 '안녕' 그 사이에는 아무런 글자도 적혀있지 않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의미를 담았다. 여백을 둔다는 건 채운다는 것의 다른 이름이다. 최대한 많은 말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 말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설명한다. 여백이 없는 말들은 결국 완성되지 못한다. 그릇을 가득 채운 밥과 나물은 제대로 비벼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카카오톡 상태글에 적을 말을 고민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못 적었었다. 지금의 나를 적확하게 표현하는 촌철살인의 말을 쓰고 싶었는데 어떤 말을 써도 억지스러웠다. 점점 부정확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 말도 적지 않았다. 차라리 그게 정답이었다. 그래서 여백의 중요성이 떠올랐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그게 더 많은 것을 포함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채움이 미덕이라 믿었던 미숙했던 나에게 쓸쓸한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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