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다나

by 김작가

반다나

‘쿨하다’는 말을 아직까지 쓴다는 게 신기하다. 쿨한 말보다 쿨하지 않은 말은 없다. 섹시하다는 말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처음 TV에서 연예인에게 섹시하다는 말을 하는 걸 봤다. 혼자 보고 있었음에도 괜히 부끄러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떻게 섹시하다는 말을 면전에서 할 수가 있지. 섹시의 어원은 그 그 그거 아닌가. 하지만 난 이제 문장을 보며 말한다. “이 문장 섹시하네”

존재는 언어로 성립되는 것이라 했나. 노암 촘스키 혹은 비트겐슈타인이 말했을 것만 같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요즘이다. 반다나(bandana)는 손수건이다. 힌디어로 '홀치기염색'이라는 뜻이기 하지만, 어쨌든 손수건이다. 올여름을 강타할 패션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본 단어. 그 단어에 꽂혀 요즘은 그 단어가 머릿속을 맴돈다.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은 아니다. 반다나는 내 사전 안에 부재하던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만 관심 없던 단어였다. 그런데 왜 지금은 마음에 드는 걸까. 친구로만 알고 지내던 이에게서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그런 느낌일까. 부재함을 존재케 하는 것이 아무런 동기도 원인도 없는지라 당혹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이 단어의 모양과 말할 때 느낌이 좋아서 계속 종이에 아무렇게나 쓰고 싶다. 시야 안에서 떠나지 않게 두고 싶다. 사실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나는 ID에 큰 의미를 담는 사람이라 게임 ID 하나를 짓는데도 며칠씩 걸리곤 했다. ID는 게임 속 내 이름이며 그 안에는 나의 인생관, 가치관, 나아가야 할 방향, 철학 등을 담고 있다는 과몰입 때문이다. 하지만 욕심을 잔뜩 부린 뷔페 접시처럼 이것저것 뒤섞여 아무것도 아니게 된 적이 많다. 그렇게 해서 만든 ID는... 참 부끄러워서 입에 담을 수가 없다.

6개월 전에는 summer라는 단어에 끌려 여기저기 ID를 썸머 혹은 summer로 바꾸기도 했다. 지금은 bandana로 바꾸었는데 이 단어가 가져온 이끌림의 유통기한은 2개월 정도로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이외에도 atmosphere, earl grey, van 등이 있다. 왜 죄다 영어라고 묻는다면, 외국어가 주는 느낌 때문이라 하겠다. 한글은 말하는 순간 혹은 눈으로 읽는 순간 의미가 와 닿아서 신비감이 없으나, 외국어는 포장되어 있어서 의미가 한 번에 와 닿지 않는다. 한글은 와 닿아서 이해가 되는 것이라면, 외국어는 가 닿아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난 그런 사람인 것 같다. 알 수 없는 것에 매력을 느끼고 그 매력이 풍화되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 그래서 난 정착하지 못하고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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