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말에 그을려
"너무 추워, 가까운 데 아무 데나 들어가자."
우리는 근처 카페로 갔다. 우리 사이에 조그맣게 빛나는 그 감정이 사랑인지 우정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몇 년 동안 서로를 엇갈리며 바라봤다. 일 년 전 그 친구 옆에는 다른 남자가 서 있었고, 이 년 전 내 옆에 다른 여자가 있었다. 그 이 년 동안 숱하게 서로의 연애에 대해 이야기했고 결혼에 대해 고민했으며 원하는 인생에 대해 확인하고 확인시켜주었다. 그 사이를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친구는 차가운 바람을 피해 들어간 카페가 꽤 마음에 든다 했다. 노란 듯 붉은 조명이 나무 테이블을 뒤덮고 있었다. 음악이 없어 히터 소리만 들렸고, 창가 옆에 놓인 책장에는 책이 가득 꽂혀있었다. 몸이 따뜻해지니 금세 기분이 좋아졌는지 자리도 잡지 않고 책장으로 달려갔다.
"여기 우리 아지트 하자. 좋다, 여기 정말, 노란 조명들 봐."
“저기 구석에 앉자.”
요즘 들어 우리는 부쩍 자주 만나고 있다. 마치 결재 서류를 올리기 전에 오타 난 곳은 없는지, 숫자는 틀리지 않았는지 꼼꼼히 확인하는 것처럼. 그리고 난 어쩌면 오늘 확신할 것 같다. 어쩌면 이제는 말해야 할 수도 있다고. 자리를 잡고 앉으니 지헌이가 타이밍에 대해 말한다.
"저번에 네가 말했던 타이밍이라는 거 있잖아. 연애나 직장이나 다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거."
"응. 저번 주에. 돼지 숙주볶음 먹으면서 한 말."
"어제 파전집에서 회식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타이밍이라는 거, 파전에도 해당되는 거 같다고.”
"왜, 파전이 너무 늦게 나와서 기분 상했어?"
"아니, 좀 들어봐 진지한 통찰이니까. 파전은 뒤집을 때를 놓치면 다 타버리잖아. 그런데 타버린 파전도 위에만 보면 멀쩡해 보여. 밑은 새까맣게 타버렸는데. 겉으로는 멀쩡해도, 못 먹는 음식이 되어버리는 거지. 그래서 타이밍이라는 건 파전 구울 때도 해당되는구나 싶더라고."
갑자기 이런 말은 왜 하는 걸까. 마치 지금이라는 듯, 뭔가를 말하라는 듯, 나를 쿡쿡 찌르는 것 같다. 넌 먹을 걸 얼마나 좋아하면 파전 먹을 때도 그런 생각을 하냐, 황교익을 꿈꾸는 거냐, 마케터 하지 말고 푸드 칼럼니스트를 하라고 되받아치며 심장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감추었다.
"그런데 그건 네가 파전을 안 구워봐서 그래. 냄새가 나잖아. 타기 시작하면 냄새가 난다고. 놓치려 해도 놓칠 수가 없어. 잠깐 근데 우리 주문 안 했지? 뭐 먹을까? 지헌이 넌 레몬 요거트?"
"응 난 그거. 넌 또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실 거지? 춥지도 않냐 정말."
뒤집어야 할 파전처럼 좋아하는 마음에도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말할 때 지헌이의 말에서 향기가 났고 빛이 났다. 그 향기가 진해서 마음에 뱄고, 빛에 마음이 그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