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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May 01. 2017

언제나 사라질 준비, 성냥

[김작가의 사기열전] #샀다 #성냥

오늘 소개할 물건은 성냥이다. 내 돈을 주고 성냥을 산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카카오페이로 유엔성냥을 결제하는 기분은 묘했다. 요즘 오이뮤(OIMU)라는 디자인그룹에서 성냥과 향초 디자인을 시도하면서 소장하고 싶은 '예쁜' 성냥갑을 살 수도 있었지만, 난 오리지널을 사기로 한다. 이게 더 싸다.



제품명은 유엔 팔각 성냥이다. 전면에는 UN이라는 글씨가 크게 적혀있고, 플라스틱으로 감싸고 있지 않은 부분이 성냥을 꺼낼 수 있는 입구가 되겠다. UN이라는 이름을 쓰며 이토록 한국적인 미를 가진 물건이라니. 나전칠기를 보는 것 같다.



공산화를 반대하고 간첩으로부터 우리나라를 방어하자! 흘러간 '반공 방첩'이라는 네 글자가 아직도 흘러가지 않은 곳이 있기도 하겠지. 과거에 사는 사람들...



성냥을 어디다가 쓰려고 샀냐고 물으면, '예쁘지 않아요?'라고 반문하고 싶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빨간 머리들이 마치 금요일을 기다리는 직장인들 같지 않나. 금요일에 직장인들은 발화점이 낮아져서 쉽게 불타오른다.



갑자기 정전이 날 일도 많이 없을 뿐더러, 스마트폰이 손전등 기능을 기본적으로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성냥을 쓸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말이야. 성냥은 스스로를 태워서 불을 지피는 물건이거든.



그것만으로도 아련해진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이 낡으면 버리는 것들이지 않나. 혹은 충전하며 몇년을 쓰다가 지겨워지면 버려지는 것들. 그런데 성냥에게는 낡음이라는 게 없다. 스스로를 불태워 곧장 사라지는 것. 성냥이 아름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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