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사라질 준비, 성냥

[김작가의 사기열전] #샀다 #성냥

by 김작가

오늘 소개할 물건은 성냥이다. 내 돈을 주고 성냥을 산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카카오페이로 유엔성냥을 결제하는 기분은 묘했다. 요즘 오이뮤(OIMU)라는 디자인그룹에서 성냥과 향초 디자인을 시도하면서 소장하고 싶은 '예쁜' 성냥갑을 살 수도 있었지만, 난 오리지널을 사기로 한다. 이게 더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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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명은 유엔 팔각 성냥이다. 전면에는 UN이라는 글씨가 크게 적혀있고, 플라스틱으로 감싸고 있지 않은 부분이 성냥을 꺼낼 수 있는 입구가 되겠다. UN이라는 이름을 쓰며 이토록 한국적인 미를 가진 물건이라니. 나전칠기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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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화를 반대하고 간첩으로부터 우리나라를 방어하자! 흘러간 '반공 방첩'이라는 네 글자가 아직도 흘러가지 않은 곳이 있기도 하겠지. 과거에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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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을 어디다가 쓰려고 샀냐고 물으면, '예쁘지 않아요?'라고 반문하고 싶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빨간 머리들이 마치 금요일을 기다리는 직장인들 같지 않나. 금요일에 직장인들은 발화점이 낮아져서 쉽게 불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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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정전이 날 일도 많이 없을 뿐더러, 스마트폰이 손전등 기능을 기본적으로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성냥을 쓸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말이야. 성냥은 스스로를 태워서 불을 지피는 물건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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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으로도 아련해진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이 낡으면 버리는 것들이지 않나. 혹은 충전하며 몇년을 쓰다가 지겨워지면 버려지는 것들. 그런데 성냥에게는 낡음이라는 게 없다. 스스로를 불태워 곧장 사라지는 것. 성냥이 아름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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