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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May 27. 2017

그들이 화난 이유,<성난 서퍼들>

[영화 일기]인간은 자연을 바꾸려고 한다

"야 아깝게 왜 뽑아. 그냥 외워."


알라딘 서점에서 도서 위치가 적힌 종이를 뽑는 내게 친구 S가 말했다. 나는 할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게 편해서..." 조금 부끄러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살면서 환경을 걱정해본 적이 거의 없다. 변명을 하자면, 겪지 않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건 사실 쉽지 않다. 권력의 부패 등 세상의 다양한 불의에 쉽게 분노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그게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기준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많은 이슈 중 특히 '환경 보호'라는 것이 상관 없게 느껴졌다. 북극의 얼음이 녹아서 살곳을 잃어가는 이미지는 귀엽게 콜라는 나눠마시는 이미지보다 약했고, 쌓여있는 길거리 쓰레기통 위의 일회용컵은 매너없음에 대한 짜증에서 그쳤다(타인의 행동에 대한 비난은 아주 쉬웠다). 그래서 문제 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계몽시키기 위해 도구를 이용한다. 그것이 매체다.


신문, 잡지, 라디오, 영화 등 다양한 매체 중 영화는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기에 아주 효과적이다. 관객들은 어두운 곳에서 오로지 영상에 몰입해 시청을 하게 되는데, 영화에 빠지게 되면 지구 반대편의 사건도 마치 나의 일처럼 격하게 공감하기 때문이다. 시각, 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며 폐쇄된 공간에서 다른 감각들은 닫아버린다. 무비저널리즘이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하는 이유도 영화의 이런 특성 덕분이다.


환경을 고려하지 않았던 라이프스타일의 내가 조금씩 변하게 된 것도 한 편의 영화 때문이다. <성난 서퍼들>(2016, 83분)이라는 환경 다큐멘터리를 보고 소비관이 달라졌다. <성난 서퍼들>의 원제는 <White waves>인데, 한국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영제가 하얀 파도를 안전하게 탈 날이 올 것이라는 미래적 제목이라면, 번역된 제목은 현재를 담고 있다.



자신이 살던 해안가에서 서핑을 하며 여가를 보내는 유럽의 서퍼들. 하지만 언제부턴가 서핑을 하고 나면, 귀에 염증이 생기거나 구토를 하고 피부병이 생기기 시작했다. 인근의 공장에서 폐수를 바다로 흘러보낸 탓이다. 서퍼들은 단체를 조직하고 그들의 삶 그 자체인 바다를 지키기 위해 실태를 고발하고 권력과 싸우기 시작한다.


바다를 오염하는 원인은 공장의 폐수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무심코 버리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평생 썩지 않으며 미세플라스틱을 배출하고, 그것을 먹은 어류는 다시 인간에 의해 섭취된다. 1인 가구의 증가로 도시락 사용량이 나고 커피 소비가 증가하며 일회용컵의 사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당장 편하기 위해 쓰고 있는 플라스틱은 땅에 버려지면 토양 오염, 바다로 흘러가면 해양 오염, 소각되면 공기 오염을 유발한다. 하지만 당장 와닿지 않아서 누구도 화내지 않는다.


사람들은 미세먼지 때문에 못 살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동차를 이용하고, 옷이 있지만 옷을 사고, 텀블러를 집에 두고 일회용컵을 쓴다. "우리가 자연을 이렇게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또다시 자연을 바꾸려고 해요." <성난 서퍼들>에 나오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통해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곧 우리를 보호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이 옷도 재활용으로 만들긴 했지만, 안 사는 게 제일 좋겠죠."


영화를 보고 구입 목록에 적어놓은 물품들을 모두 지웠다. 파란색 셔츠, 검은색 바지는 사지 않기로 했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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