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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Jun 30. 2017

당신이 반해버릴 배우, 최희서

[영화 리뷰] <박열>의 주연 최희서를 중심으로

<황산벌>, <왕의 남자>, <사도>, <동주> '한국 사극 영화의 대부' 이준익이 돌아왔습니다. 가장 말 안듣는 조선인 <박열>을 들고 말이죠. 이준익 감독의 작품 중에는 <소원>이나 <라디오스타>처럼 현대극도 있지만, 유난히 사극 장르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이 과거일 뿐 메세지는 우리가 사는 시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사도>가 영조와 세자의 정치적 갈등보다는 아버지와 아들 구도로 이야기를 전개한 건 다름 아닌 세대 간 갈등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였죠. 그런데 장르적 공통점 외에도 이준익 감독의 작품을 보면 캐스팅에 일정한 규칙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초기작인 <황산벌>, <라디오스타>부터 <왕의 남자>, <동주>, <사도>까지 남자 배우를 투톱으로 세우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우연은 <박열>에서는 이어지지 않습니다. 이제훈과 함께 주연으로 캐스팅된 '최희서' 이번에는 그녀에 대해서 알아볼까 합니다.




최희서, 처음 들어본 이름이야


포털에서 최희서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보면 '이준익의 뮤즈', '중고 신인' 이런 수식어들이 나오는데, 일단 뮤즈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가 없네요. 남자 배우들에게는 페르소나라는 수식어를 붙이면서 왜 꼭 여배우에게는 뮤즈라고 해야 할까요. 배우 그자체가 아니라 감독에게 영감을 주는 도구적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단어입니다. 그럼 중고신인이라는 표현은 어떨까요. 그녀의 데뷔는 2009년으로 포털 프로필 상에는 31세로 되어있습니다. 2009년도에 <킹콩을 들다>로 데뷔를 했지만, 이후 독립영화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활동이 없었습니다. 물론, 연극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고 하지만, 상업영화에서는 보기 드물었죠. 그 이후 2015년 <동주>, 2017년 <박열>로 충무로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니 중고 신인이라는 말이 틀린 표현이 아니네요. 이쯤에서 궁금해집니다. 작품 활동도 크게 없었던 배우가 <동주>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걸까요.


최희서의 캐스팅 비화


어느날, 최희서는 동료들과 함께 사비를 모아 연극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공연을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에 연습실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대본을 놓을 수가 없었죠. 사람들이 있는 지하철에서 주변 신경을 안 쓰고 중얼중얼 대본을 외우고 있었는데, 마침 최배우 건너편에 신연식 감독이 있었던 거죠. 당시 <동주> 제작을 준비 중이던 신연식 감독은 맞은 편에 앉아서 그 모습을 봤습니다. 신연식 감독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처음에는 미친여자라고 생각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잘 들어보니 중얼거리던 말이 대사였던 겁니다. 신 감독은 생각합니다. '만약 나와 같은 지하철역에 내리면 명함을 줘야겠다' 경복궁역에서 신 감독은 내리려할 때, 최 배우도 내립니다. "길에서 누구한테 명함 주는 건 처음인데요. 배우시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동주>에 출연하게 되고 쿠미 역에 캐스팅됩니다. 명함을 받을 때 최 배우는 일본어를 잘한다는 장점을 어필했다고 하네요.



"최희서일 수밖에 없었다"


<동주>를 봤을 때는 최희서에 대한 배경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최 배우의 일본어 연기를 보며 일본인인줄 알았습니다. 엔딩크레딧을 보고나서야 한국인인걸 알고 깜짝 놀랬죠. 어린 시절을 일본 오사카에서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5년 동안 한인초등학교에 다녔는데, 이런 경험 덕분에 <동주>에서도 쿠미라는 일본인 역을, <박열>에서도 가네코 후미코 역을 맡게 된 것이죠.


사실 <박열>에서 최희서가 캐스팅된 걸 보고 처음에는 '일본어 대사의 양이 너무 많을 텐데, 일본 배우를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준익 감독은 그게 어려웠다고 합니다. 반한 감정이 있는 아베 정권에서 일본인 독립운동가 '가네코 후미코'라는 캐릭터를 용기있게 연기할 배우를 찾기가 어려웠던 거죠. 더군다가 연기력까지 되는 배우를 찾기도 힘들었고요. 그렇다면 왜 다른 배우가 아니라 최희서냐 물을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아는 유명 배우를 일본인이라고 우기는 게 싫었다" 이것이 이준익 감독의 대답입니다. 누가 봐도 한국 배우인데 '저 사람 일본여자야'라고 우기면 몰입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얼굴도 많이 알려져있지 않으면서 일본어 연기도 완벽하게 구사하는 최희서가 유일한 답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최희서가 캐스팅된 이유에는 유창한 일본어 실력만 있는 건 아닐겁니다. 한 감독의 작품에 연속 캐스팅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게다가 <박열>이라는 영화는 이준익 감독이 거의 17년 전부터 생각을 했던 아이디어였습니다. 이준익 감독은 2000년에 개봉한 <아나키스트>(각본은 박찬욱)를 제작했는데, 그때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언젠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영화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네요. 그정도로 간절한 영화이니 절대 쉽게 캐스팅할 수 없는 것이었죠. 최희서의 인터뷰와 글을 통해 최 배우는 캐릭터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 또한 완벽한 배우라고 느꼈습니다. <동주> 에피소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최희서가 연기를 준비하는 법


<동주>에서 쿠미의 첫 등장 신은 '동주가 대학 수업 시간에 몰래 시를 쓰는 장면'입니다. 이때 쿠미는 시를 쓰는 동주의 모습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죠. 최희서는 그 신을 촬영하면서 그날 동주를 처음 만난 날은 아닐거라고 설정했습니다. 자기 앞에 앉은 남학생이 항상 뭔가를 쓰는 것을 몇번 봤다고 설정했죠. 그것이 한국어라는 것도 알고, 연이 나눠져 있으니까 시라는 것도 알기 때문에 무엇에 대해 쓰는 건지 궁금한 상태라고 생각한 것이죠.


이 장면에서 대사는 없습니다. 동주가 수업을 듣다가 창밖을 바라보고 몇글자 적는 동안 쿠미가 대각선 뒷자리에서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동주가 시선을 느끼고 책으로 시를 덮는 장면입니다. 대사가 없는 한 신의 사소한 행동에서도 이런 캐릭터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최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대본에 없는 내용은 마음 속으로 설정을 해놔야 연기하기에 좋은 것 같다"


이런 보이지 않는 준비는 이준익 감독의 연출 덕분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이준익 감독은 촬영장에서 이런 질문들을 툭툭합니다. "쿠미는 동주를 사랑할까?" 하지만 이런 설정은 대본만 봐서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드러나는 대사와 행동을 두고 상상을 하는 것이죠.

최희서는 연기외에도 글도 잘 쓰는 배우라서 브런치에 연재한 최희서의 글을 통해 우선 먼저 느끼고, <박열>을 보는 것도 좋을 감상법일 것 같습니다. <박열>은 제목이 '박열'인 것에 비해 영화는 가네코 후미코를 무척 사랑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영화였습니다. 박열이 아닌 가네코 후미코의 감정을 따라가며 영화를 감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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