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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해서

영화 <파이란> 감상평

by 김작가

거부감 없이 얘기할 수 있는 철학적인 주제가 몇 가지 있다.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사람은 변하는가'. 이런 주제는 생각보다 심오하고 철학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부감없이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한번쯤은 생각해봤을 만한 주제기 때문일 거다. 이런 걸 생활철학의 영역으로 묶고 싶다. 특히, 이런 토픽은 성인이 되고 대학생활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사람들과 부딪히다보면 으레 한번쯤 비슷한 경험을 하기 마련이다. 오늘은 '사람은 변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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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란>(2001)에 나오는 강재(최민식 분)는 양아치다. 양아치중에서도 쌩양아치다. 깡패짓은 하지만 마음이 여리고 입에 욕을 달고 살지만 정작 조직원들에게는 무시당한다. 조직일을 같이 시작했던 친구는 보스가 된 반면, 강재는 후배들에게도 무시당하며 산다. 중국인과 서류상 혼인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고 그 사실조차 잊고 살던 강재는 그 부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지방으로 내려 가게 된다. 그리고 대화 한번 나눈 적 없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살았던 아내의 흔적들을 보며 강재는 마음이 착잡해진다.


<파이란>은 남녀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멜로영화는 아니다. 멜로영화로 분류되지만 이 영화를 그 큰 카테고리에 포함시키자니 참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죽은 사람의 장례식을 치르며 겪게되는 한 사람의 성장기에 가깝다. <파이란>을 연출한 송해성 감독은 '사람은 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주저없이 '네'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리고 바로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덧붙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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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믿음과 사랑은 성장기의 소년들에게 중요하다고 알고 있다. 우리는 대중매체를 통해 따뜻한 가르침과 보살핌으로 비행청소년이 훌륭한 어른이 되는 미담을 숱하게 접한 바 있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강재에게 필요했던 것도 따뜻한 감정이 아니었을까. 쓰레기 더미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더럽게 살았는지 몰랐던 그는 무리에서 한발자국 물러나 인간의 죽음에 대해 하찮게 말하는 동료들을 보며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 같다.


쌩양아치고 호구인 내가, 나를 한번도 본 적 없는 마누라는 내가 제일 친절하단다...

언제나처럼 술을 마시던 강재였지만, 이 날은 조금 달랐다. 오랜만에 느끼는 따뜻함에 고마움을 느꼈을 수도 있다. 사람은 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게 여전한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변한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겨울을 견딜 수 있는 건 봄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시련을 견딜 수 있는 동력은 약간의 따뜻함이라 믿고 있다. 더 따뜻할 날들을 위해 오늘의 추위는 견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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