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추> 감상평
부끄럽게도 <만추>(2010)를 이제야 봤다. 주변에서 <만추>에 대해 한마디씩 할 때 '나도 어서 봐야지'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맛있는 음식일수록 아껴서 먹자는 계획도 아니었다. 주변에서 명작이라고 두 엄지를 치켜세우니 더 경계를 하게 된 것 같다. 참 독특한 성격이다.
온라인게임 할 때면 보스몬스터를 처치하기전에 약한 몬스터와 몸을 풀 듯 난 다른 영화로 몸을 풀곤 했다. 가벼운 영화로 머리를 풀고 드디어 <만추>를 봤다. 부끄러운 감정을 들었던 건 영화를 보고 나서였다. 왜 각종 변명으로 영화보기를 미뤄왔던 걸까. 그냥 두 번 보면 될 것을...
감옥에서 복역중인 애나 첸(탕웨이 분)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72시간의 외출을 허락받는다. 우연히 버스에서 만난 훈(현빈 분)을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얘기를 나누며 점점 속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하지만 애나는 다음 날이면 감옥으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이기에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결국 감옥으로 돌아가기 전날 애나는 훈에게 수감자라는 사실을 털어놓지만 훈은 화이(중국말로 안 좋다는 뜻)라는 말만 몇 번 할 뿐 여전히 잘 해준다. 애나가 감옥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훈도 같이 탄다. 안개가 심해서 버스기사가 잠시 휴식시간을 가질 때, 둘은 키스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훈의 직업이 꽃제비여서일까. 그는 여자의 마음을 굉장히 잘 안다. 배려심이 깊다. 그의 고차원적인 배려심은 포크씬에서 절정을 보여준다. 애나가 과거에 사랑했던 왕징이라는 남자와 훈은 몸싸움을 하게 된다. 장소는 장례식장. 애나는 왜 이러는 거냐고 거칠게 둘을 떼어내며 훈을 다그치자 훈은 말한다.
"저 사람이 내 포크를 썼어요. 한 마디 사과도 안 했어요."
이 대사 뭘까. 어떻게 이런 대사를 쓸 수 있었을까. 훈은 과연 장례식장에 들어가는 전부터 모든 사건을 계획했던 것일까. 훈이 말하는 포크는 애나의 첫사랑인 왕징이 씌운 살인죄 누명에 관한 비유다.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모든 감정을 눌러담고 살고자 했던 애나는 그때 서러움이 폭발한다.
"포크를 썼으면 사과를 해야지 왜 사과하지 않았어요!"
그동안 단단하게 얼어있던 애나는 처음으로 오열한다. 그건 훈이 애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아마 훈의 이런 의도는 영화 초반부터 어느정도 짐작가능했다. 애나가 간지러워서 얼굴을 긁을 때 훈은 말한다.
"긁지마요. 그럼 더 나빠져요."
애나는 남들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가슴에 묻어둔 상처를 계속해서 긁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더 나빠지지 않게 훈은 애나가 오열하게 만들었다. 만추... 늦가을이라는 뜻이다. 햇살좋은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마저 지날 즈음에 사람들은 겨울맞이 채비를 한다. 늦가을엔 마치 모든 게 끝난듯이 낙엽은 떨어지고 날씨는 추워지고 길거리엔 사람들이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가을엔 그만큼 봄에 더 가까워진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또 버틸 수 있다. 그게 바로 만추가 주는 메세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