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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Sep 05. 2017

20세기의 여자들 그리고 나

김해경의 영화일기 <우리의 20세기>를 보고 난 후

최근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이슈는 '김사복'씨도 아니고 '장동건의 어설픈 욕설'도 아닌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feminism)을 한국어로 풀어쓰면 어떤 말이 적당할까. 여성주의라고 해석하면 사전적으로 정답! 이해가 부족한 사람은 '여성우월주의'로 해석을 시도하기도 하겠다. 쯧쯧. 그건 아주 오답입니다. 페미니즘은 성평등주의로 해석을 하면 된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타성 위에 올리려는 운동도 아니고 오로지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주장하는 운동도 아니다. 모든 성차별을 금지할 것을 말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한국 영화계에서는 최근 들어 페미니즘적으로 갑론을박이 있었다. <청년경찰>과 <V.I.P>(이하 브아피)라는 두 영화 때문이다. 두 영화에서 모두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가 등장하는데 <청년결찰>에서는 두 경찰대생이 여성 상대 범죄를 목격하며 자신의 인생 방향을 잡아가는 이야기가 나오고, <브아피>에서는 싸이코패스인 이종석이 여성을 상대로 너무 더럽고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다.(나쁜 XX) 문제는 꼭 그런 설정과 그런 장면이 필요했냐는거다.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복잡하다. 필요한 부분도 있었고 과한 부분도 있었다. 두 영화에 대한 생각이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니 이쯤에서 접는다. 하지만 <브이아이피>는 영화가 철저히 재미없었다는 것에서 이미 탈락이다.


자 드디어 <우리의 20세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 영화의 원제는 <20th Century women>이다. 20세기 여자들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지. 20세기의 여자들이라는 제목이었다면 '아 이 영화는 여자들이 주인공인 영화구나'라고 생각할 텐데, 우리의 20세기라는 제목으로 바뀌며 '아 이 영화는 시대에 대한 영화겠구나'로 초기반응은 달라졌다.


이렇게 세 명이 주인공이에요


영화를 보면 남자 아이(제이미)가 주인공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포스터를 보면 여자 셋이 포스터를 삼등분하고 있다. 그 세 명이 주인공이다. 엄마에게 세들어사는 애비와 (아들 친구)줄리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나 혼자 제이미를 키우는 거로는 부족해. 너희들이 좀 도와줘. 너희들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줘."


줄리와 애비에게 부탁하는 엄마 "우리 제이미를 너희들이 좀 돌봐줄 수 없겠니?"


제이미에게는 오직 엄마 밖에 없었기 때문에 엄마는 걱정되었던 거였다. 엄마는 그 시대의 다른 엄마들보다 진보적이었지만 그럼에도 아들이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다가 갑자기 뒤에서 가슴을 압박하면 몇초간 기절하는 '기절놀이'를 하다가 제이미가 30분 정도 정신을 잃은 적이 있었다. 그 사건이 엄마의 걱정을 증폭시켰던 거였다.


그러니까 일종의 공동육아를 제안한 것인데, 제이미로서는 절친이 자신의 엄마처럼 행동하는 게 자존심 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몇번의 잡음 끝에 잘 진행된다. 엄마노릇이라고 해봤자 별거 없다. 줄리와 애비의 삶을 같이 공유하고 대화를 좀 더 많이 하는 것뿐이다. 예를 들면, 애비가 클럽에서 노는 걸 보여주거나 병원에 수술 상담 받으러 갈 때 같이 가는 것, 줄리가 임신했을지도 모른 상태에서 불안해할 때 같이 있어주는 것 정도다.


"우울할 때 춤을 추면 된다는 걸 알려줄게"


엄마는 두 여자 아이에게 제이미를 같이 키우자고 제안했지만 반대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두 여자들같아보였다. 누가 누굴 가르칠 입장이 되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었는데, 그런 생각이 든 이유를 좀 더 생각해보면 20세기의 여자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현실 때문이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여자인 이유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제이미는 본다. 현실이 알아가게 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많은 여자들이, 많은 남자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덜 싸웠으면 좋겠다. 페미니즘을 이용해서 돈을 벌고 싶어하는 콘텐츠 중에 진솔한 페미니즘 영화라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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