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8일] 추석 정리 일기
1. 알고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확신하는 건 섣부를 때가 많다는 걸. 하지만 30년쯤 살았으면 이젠 확신해도 되지 않을까. 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2. 사랑에 빠진 여자에게 물어보자.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무엇이 좋습니까' 그는 매력적인 작은 눈을 말할 수도, 귀여운 낮은 코를 말할 수도, 어쩌면 귀여운 뱃살을 말할 수도 있겠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건 대상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매력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봤을 때는 한없이 불편한 것들이 여행에 빠진 사람에게는 매력덩어리로 보이곤 한다. 그리고 난 가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한다. 그 여행의 이름이 거창으로 떠나는 캠핑이나, 오사카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우리라는 이름의 여행'으로 기억될 수만 있다면.
3. 추석에 여행을 간 건 처음이이었다. 친구 몇몇이 모여 술을 마신 적은 있었지만, 다른 도시에서 만난 건 처음이다. 심지어 캠핑이라니, 심지어 1박 2일이라니.
4. 숯에 불을 붙이는 데 10분 가까이 걸렸고, 가브리살은 기름이 너무 많아 숯불을 화나게 했다. 불빛이 없어 삼겹살은 익은 건지 확인이 어려웠다. 몇 점의 덜 익은 고기를 먹고 나서야 익은 고기를 구분하는 요령이 생겼다. 하지만 가위가 없어서 칼로 고기를 찢어 먹듯 뜯어 먹었고 우린 마치 구석기 시대의 사냥꾼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숨을 쉬며 다신 캠핑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캠핑만 하지 않을 뿐 우리는 또 만날 것 같다.
5. 살면서 몇백번의 술자리와 몇천번의 약속을 할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더 기억에 남는 자리는 '뭘 시킬까' 메뉴판을 보거나 '연애의 고달픔과 애달픔'에 대한 하소연을 늘어놓는 자리는 절대 아니었다. 같이 밤하늘을 보거나 오롯이 같은 공간에서 대화를 하는 그런 자리가 생생하게 남아있다. 작년에 기억하는 술자리도 모두 그런 자리였다. @owowtt 와 @tsopyun 를 함께 만나는 날은 일 년에 한번쯤 되겠지만, 좀 더 자주 보자, 아쉽다, 라는 말 보다는 앞으로의 여행이 더 기대가 된다고 말하고 싶다. 같이 나이를 먹으니 하나도 붙잡고 싶은 것이 없다. 시간이 흐르는 게 아무렇지 않다.
덧. 이번 여행에서 인상 깊었던 건 콘텐츠 소비 트렌드였다. 대화의 주제가 바뀌었다. 그동안 특별한 주제없이 모든 이야깃거리를 유영하는 토크를 즐겼지만, 이번에 새로 추가된 건 '유튜브'였다. 아이패드를 텐트 중앙에 놓고 서로 즐겨보는 채널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우리 삶이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끼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