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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Oct 10. 2017

추석에 본 영화들

<범죄도시> <남한산성> <아이캔스피크><김광석><킹스맨> 

'추석 영화'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남녀노소 볼 수 있는 '가족 영화'이거나 남녀노소 웃을 수 있는 '오락 영화'였다. 철저히 웃기는 것에만 집중한 <가문의 영광> 시리즈, 부녀의 정을 다룬 <가족> 등이 그랬으니까. 그런데 역대 추석 개봉작을 보면 얼핏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다르다.  <관상>, <광해, 왕이 된 남자>, <사도>, <밀정>. <밀정>이 독립운동사를 다루니 오래되지 않은 역사라고 해도 사극에 포함되니 사극이 강세인 것이다. 그렇다고 또 주제가 일관된 것도 아니다. 사극 -> 왕의 이야기 -> 리더십? 이라는 편견은 <광해> 밖에 해당되지 않는다. 영조와 사도세자를 다룬 <사도>는 정치싸움보다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더 집중했고, <밀정>은 개인의 선택과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뿐이다. 사극 영화가 흥행하는 건 추석의 트렌드가 된 것일까. <남한산성>이 생각보다 많은 관객수를 동원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1.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10월 7일 기준으로 260만명을 돌파했다. 이번 추석에는 절대 강자가 없었던 소수의 케이스로 기록될 것 같다. 어떤 영화도 독주하지 못했다. 그중 남한산성은 가장 선두에 있었던 영화이기는 한데, 가족 단위의 관객이 어떤 영화를 선택할까 고민할 때는 '꼭 보고 싶은 영화'보다는 '보기에 민망한 영화'를 소거하기 때문이다. 명절에 부모님과 영화를 한 편 보려고 하는데 베드씬이 나오면 정말 민망할 테니까. 그래서 <남한산성>이 많은 선택을 받았을 거라 예상한다. 연휴가 끝날 무렵 <범죄도시>가 다시 <남한산성>을 제치고 예매율 1위에 올랐다는 것을 보면 '부모님과 헤어지고 다시 도시로 귀환한 시민들이 정말로 보고 싶은 영화는 <범죄도시>였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남한산성>은 대중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러닝타임은 139분이며, 영화는 칼로 사람을 찌르고 베는 전투보다는 말로 싸우는 척화파와 주화파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매우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게다가 원작인 김훈의 문체를 거의 그대로 옮긴 탓에 문장은 훌륭하지만 입을 통해 나왔을 때는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필자는 이런 스타일이 무척 좋았지만, 흥행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많은 관객들은 영화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생각없이 보는' 정도로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달에 영화 한 번 정도 보는 관객이 굳이 어려운 영화를 선택할 확률은 적지 않을까.


2. 범죄도시

다른 글에서 범죄도시에 대해 이미 언급했었지만 이 영화는 한국 액션 영화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할 것 같다. 그동안 다른 액션영화와는 달리 마동석 배우의 캐릭터를 100% 살리고 있으며, 날렵한 액션이 아니라 한방 액션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원시원한 발차기와 스피디한 추격씬이 액션 영화의 단골처럼 등장했다면, 범죄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찾기란 힘들다. 그 대신 마동석이라는 존재 자체가 주는 둔탁한 액션이 흥미롭다. 이런 류의 액션은 새롭기는 하지만 반복되면 지루할 수밖에 없다. 특히 후반부에 등장하는 덩치 큰 조폭이 한 대맞고 쓰러지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보고 '아 이 배우는 이 씬을 위해 캐스팅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동석과 싸우는 조폭이 불쌍해보였다. 특히 악역 보스인 윤계상은 그냥 얻어 터져서 반쯤 죽는다(이 표현이 정확하다).


3. 아이캔스피크

아이캔스피크를 보면 도대체 왜 원로 연기자를 캐스팅하는 영화는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든다. 젊은 연기자에게 노인 분장을 시키는 어설픈 방식보다 낫지 않을까. 이미 고인이 된 김영애 배우도 그랬지만, 나문희 배우의 연기 역시 말을 잃게 만들었다. '남자 젊은 배우'의 독무대가 된 충무로에게 항의하고 싶다. 더 다양한 배우를 캐스팅해달라.


4. 킹스맨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킹스맨:골든 서클>은 여러모로 많은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1편 흥행세의 중심에는 분명 해리(콜린 퍼스)의 젠틀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같이 호흡을 맞췄던 에그시(테런 에저튼) 딱 성장하는 모습이 어울렸다. 2편에서는 그 반대가 되어 에그시가 엘리트 요원의 역할을 수행했는데, 그 모습이 졸업파티에서 멋부린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차라리 록시가 요원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멀린이 초중반까지 극의 중심을 잡아줬는데, 후반에 허무하게 죽여버린다. 에그시는 영화를 이끌 수 있는 무게감이 부족한데 초반부터 후반까지 감당해버리니 영화가 가벼워졌다. 후반에 콜린퍼스가 정신을 차렸지만, 계속 멋없게 나온 것도 실수다. 한쪽 선글라스 디자인은 뜨악스럽고, 로봇강아지에게 쫓기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게 연출했다. 1편에서 처음 만난 킹스맨 세계관은 새로웠지만, 2편에서 확장시킨 스테이츠맨의 세계는 와닿지 않는 컨셉이다. 영국신사 이미지는 우리에게 학습된 이미지가 있지만, 카우보이는 한국인들에게는 멀기만 하다(킹스맨이 한국인을 위한 영화는 아니니까 상관없는 거긴 하지만). 스토리 전개상 문제도 많다. 추적기를 '그곳'에 달거나, 세계를 구하기 위해 관계를 가져야 하는 상황을 넣고, 그 전에 여자친구에게 허락을 받고, 여자친구는 그 문제로 잠수를 탄다. 그들이 외치는 save the world가 한없이 가볍다. 1편에서는 악역인 발렌타인만 사춘기 청소년 같았다면, 2편에서는 너무 많은 캐릭터가 그러하다. 이걸 보고 잘 만든 B급 무비라고 한다면 그건 B급 무비에 대한 모욕일 것이다.



5. 김광석

기자의 끈질김은 두말한 필요없이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해보이는 인서트나 산만한 카메라워킹은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 99%는 있지만 1%의 증거가 없다고 말하는 기자의 말과는 달리 영화는 서해순이 얼마나 인간적으로, 도덕적으로 나쁜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 부분이 아쉽다. 더 차갑게 그려야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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