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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Oct 22. 2017

영화로운 일기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2017 10 21

24절기말고도 계절이 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현상들은 많다. 장범준의 노래가 나오면 봄이 온다거나, 가방 속 맥북이 차가워지면 겨울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오늘 아침엔 언제나처럼 올인원로션을 바르고 카페로 출근을 했지만, 습해진 날씨를 감당하기에 나의 이니스프리 올인원로션은 미약한 것 같다. 화장품과 계절이라...그 순간 시간이 왜 이리 빨리 가는 건지 야속하기만 했다. 분명 몇년전까지만해도 더디게 갔던 시간이 이렇게 천천히 가도 되는 것일까. 아니, 천천히 간다는 표현말고 다른 적확한 표현이 있을 것 같다. 이제 계절은 감흥 없이 왔다가 감흥 없이 가는 것 같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하루라도 더 살고 싶은 여자아이와 그 여자아이가 하루라도 더 살길 바라는 남자아이의 이야기다.


영화를 보는 내내 훌쩍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영화를 보며 충분히 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은 울 수 있는 영화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초반의 대사와 장면들이 후반부에 감동을 폭발시키려는 장치로 티가 너무 났다고 생각했다. 스포일러니까 여기까지만.


전체적으로 캐릭터가 만화처럼 느껴진다는 것은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일 수도 있겠다. 뭐, 애초에 그런 류의 영화를 싫어한다면 이 영화를 보지도 않을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특히 여자아이 역을 맡은 '하마베 미나미'는 곧 죽을 사람인 것치고는 굉장히 밝다가 심오한 대사를 하는데, 그런 모습들을 잘 연기하기는 했지만, 분명 '저게 뭐야'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극 중 조연의 역할은 크게 중요하지는 않아서 대부분의 이야기는 둘을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그 사이에서 개연성에 크게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곧 죽게되는 여자아이의 운명이라는 설정이 유효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고 맞이하곤 한다. 또는 신체가 갑작스레 온전치 못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여생을 활동적으로 보낼 수가 없는데, 만약 1년 뒤에 당신이 죽고 그 전까지는 몸이 괜찮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내용이 이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괜찮았다고 생각하는 장치는 '진실과 도전'이라는 게임이었다. 둘은 비싼 호텔에서 게임을 하게 되는데, 이름처럼 진실게임이다. 트럼프 카드를 한장씩 고르고 숫자가 더 높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이긴 사람은 상대방이 '진실과 도전'중에 선택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진실은 질문에 대한 진실을 말해야 하고, 도전은 미션에 도전해야 하는 것이다. 둘이 친구가 되는 계기가 진실과 관련되어있다. 남자는 우연히 병원 복도에서 다이어리를 발견하고 읽는데 그 주인이 여자아이였던 것이고, 알고보니 같은 반 친구였던 거다. 그러니 둘의 관계는 처음에는 지나치게 비대칭적이었다. 곧 죽게된다는 사실을, 가족 외에는 모르는 비밀을 남자아이 혼자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진실과 도전' 게임에서 남자는 계속 지면서 진실을 요구받는다. 이런 과정이 비대칭적이었던 진실 관계의 균형을 맞추는 거라고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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