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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Feb 24. 2018

역사드라마에 가까운 방식으로

[영화 리뷰] <블랙팬서>가 아닌  <와칸다>였어야 했다

스포일러 있음


마블 스튜디오가 만든 영화가 크게 흥행하면서 "히어로 무비"라는 장르는 한 단계 진화했다.


과거 히어로 무비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주인공이 악당과 싸우는 장르를 의미했다. 물론 지금도 히어로무비는 그런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다. 어벤져스가 힘을 합쳐 울트론과 싸우고, 스파이더맨이 고블린과 싸우는 것처럼 말이다. 확실히 예전에는 "히어로무비"라고 하면 어떤 형식이 떠올랐지만, 히어로무비가 일년에 몇편씩 개봉하는 요즘에는 "히어로무비"안에서도 다변화되고 있는 추세다. 그러니 이젠 히어로무비를 하나의 장르라고 하기 힘들어졌다.


변호사가 나온다고 그 영화를 법정드라마로 분류하지 않는다. 변호사가 나와서 추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면 추리극이 되는 것이고, 변호사가 사랑을 하면 로맨스가 된다. 소재가 영화의 장르가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중요한 건 어떤 감정을 다루느냐, 영화가 주고자 하는 주된 재미(entertainment)가 무엇이냐이다. 물론 이것은 유사 소재가 많아져야 분류가 가능하다.


그러니 마블이 히어로무비를 연달아 흥행하지 못했다면 이런 논의가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마블로서는 히어로무비의 장르의 다변화를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다. 관객들이 히어로무비에 대해 느끼는 피로도와 권태감을 극복하지 못해면 마블 시리즈를 완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실제로 지금은 그런 한계에 다다르기도 했다고 본다. 관객들은 인피니티워를 위해 의무적으로 마블영화를 챙겨본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가 정치물이었다면 <스파이더맨>은 하이틴무비 같았다. 그리고 이번에 개봉한 <블랙팬서>는 마치 역사드라마처럼 느껴졌다. 와칸다 왕국의 역사 말이다.



오프닝부터가 그렇다. 옛날 옛적에 단군할아버지가 살았다는 이야기를 아들에게 들려주듯, 와칸다 왕국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흙인형의 움직임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다. 인물이 아니라 국가의 탄생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블랙팬서>의 메인스토리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의 주된 갈등은 와칸다를 외부에 개방할 것이냐 그대로 은폐하여 살 것이냐의 갈등, 즉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다. 이 과정에서 영화 타이틀과는 달리 주인공 티찰라(블랙팬서)의 비중은 생각보다 적다. 대신 주인공 외에 다른 인물들이 갈등과 사건에 맞서 각자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세밀하게 분배해서 보여주고 있다.



블랙팬서의 인물별 포스터에 보면 평화, 음모, 저항 등 각 인물에 맞는 단어들이 적혀있는데,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캐릭터까지 포스터를 만들어놓은 것을 보면 이 영화는 한 명의 주인공에 대해서 스포트라이트라는 영화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킬몽거가 티찰라를 꺾고 새로운 왕이 되었을 때 오코예는 자신의 직책이 장군이라는 이유로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기로 한다.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 인권운동을 하는 나키아와 티찰라의 동생은 쿠데타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또 다른 장면. 티찰라의 편에 선 오코예와 그의 남편 와카비는 서로에게 창을 겨누게 되는데 와키비는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수 있겠냐"고 묻는다. 오코예는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와키비는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다.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다소 생뚱맞음을 느낄 수도 있지만, 갈등이 종식되는 다양한 이유 중 하나로 해석했기에 난 생뚱맞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왼쪽은 티찰라의 전 여친이나 인권운동을 하는 나키야, 오른쪽은 티찰라 동생 슈리


티찰라가 왕이 되고 나서 겪게 되는 갈등도 많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갑작스럽게 왕위에 올랐기에 부족한 점이 많았고, 결국 왕위를 잃게 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알지 못했던 다른 세계를 알고 그저 와칸다 왕국을 감추고 숨기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티찰라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갑작스레 왕위에 오르지만 앙심을 품은 외부자 킬몽거에 의해 왕위를 빼앗기고 만다. 그 과정에서 티찰라는 아버지의 잘못을 알게 되고 와칸다 왕국의 나아갈 방향을 생각하게 된다. 결국 티찰라는 가족과 충성스러운 부하의 도움으로 결국 왕위를 되찾고 쇄국정책을 그만두고 개방정책을 시작한다.


만약 조선이라는 영화가 있었다면 이렇게 만들어졌을 것 같다. 태종 이방원이 나오고 정도전이 나오고 태조 이성계, 아들 세종 그리고 권력의 소용돌이 안에서 음모와 평화를 계획하는 다양한 군상들.


영화를 전달하는 방식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좁고 깊게 들어가는 방식 그리고 넓고 얕게 보여주는 방식. <블랙팬서>는 영화 타이틀과는 달리 두 번째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블랙팬서>의 제목을 다른 것으로 짓는다면 와칸다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블랙팬서>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국가의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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