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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Mar 03. 2018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감상일기

<리틀 포레스트>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시간, 여러 단어가 멤돌았다. 좋았다, 정말 좋았다, 따뜻했다, 그 중에 내가 내뱉은 말은 "버리고 싶다"는 말이었다. 버리고 싶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며, 내게 필요한 말이다.


혜원(김태리)은 임용고시에 또 떨어졌다. 편의점에서 알바를 해가며,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을 챙기는 일, 길거리에서 컵밥을 허겁지겁 사먹는 일이 혜원의 일상이었다. 임용고시를 같이 준비했던 남자친구는 합격했고 혜원은 떨어졌다. 그리고 고향으로 며칠 지낼 요량으로 무작정 내려갔다. 겨울에 내려간 혜원은 그곳에서 봄의 새싹, 여름의 열매 그리고 가을, 겨울을 지나서야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리틀 포레스트>는 그런 이야기다.


재하가 혜원에게 준 강아지 오구


혜원이 고향에 내려와 친구 은숙에게 받았던 질문은 왜 내려왔냐는 것이었다. "남자친구는 임용고시 붙고, 너는 떨어졌구나? 그래서 배 아파서 그런거지?"라는 추궁에 혜원은 콕 찔렸지만 "아니야. 배고파서 내려왔어."라고 답한다. 집에서 혼자 먹던 간편도시락이 허기를 채워줬을 리 없다. 아니, 허기는 채워줬더라도 마음의 허기는 채워주지는 못했을 거다. 간편함은 마음까지 채워주기에는 조금은 차가운 단어인 것 같다. 나 역시 몇년 전 주말 편의점 알바를 했다. 한 손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을 들고 집으로 들어와서 바닥은 너무 좁으니 책상에 앉았는데 집 안이 차갑고 마음이 쓸쓸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때 느꼈던 마음 역시 배고픈 마음이었을 것 같다.


혜원은 서울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편의점 알바를 한다.


혜원은 고향에서 요리를 해먹고, 친구들과 나눠먹는다. 직접 담근 막걸리와 손수 요리한 부침개를 놓고 셋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한다. 마치 매일 같이 지냈던 친구들처럼, 시간을 초월한 관계처럼 보였다. 혜원과 재하는 계곡에서 다슬기를 잡고, 은숙은 집에서 몰래 담금주를 갖고 나온다.


계곡에서 다슬기를 잡으며 별을 보며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일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삶과 비교했을 때, 이들의 생활에는 많은 것들이 비어있다.TV가 없다. 카카오톡도 없다. 인스턴트 음식도 없다. 육식도 없다. 공격성도 없다. 날카로움도 없다. 쇼핑이 없다. 화려함이 없다. 대신 있는 것들은 대화가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있고, 별을 보는 게 있다.


혜원의 집. 직접 담근 막걸리로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 화려함이 없지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이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와 신촌을 빠져나오는데 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였다. 일상적이었던 패스트푸드, 편의점, 사람들의 화려한 패션과 치장, 휴대폰 대리점, 신제품 광고 속의 모델들, 토익학원, 올리브영 그리고 벽돌 위를 걷는 딱딱한 촉감. 못생겨보였다.


가장 좋았던 대사 하나가 있다. "모든 온기가 있는 것들은 위로가 돼."

도시를 떠날 수는 없겠지만 온기를 지니고 있고 싶어졌다.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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