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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 이어폰을 풀어주세요

정기적이고 필연적인 꼬임에 대하여

by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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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을 주머니에 구겨넣었을 땐 어느정도 감수한다. 나중에 이 녀석을 꺼냈을 때 어느정도 꼬여있을 거라고. 그런데 가방에 넣었는데도 꼬여있는 건 왜 그럴까. 도대체 왜 그런거니?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한다. 이어폰 줄이 꼬이는 건 필연적이다. 이유는 알 수 없어도 필연적이고 정기적으로 반복된다. '원래'와 '언제나'는 오답이니 경계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살지만, 이어폰의 줄이 꼬이는 현상은 '원래'라는 말을 써야 할 것만 같다. 그리고 이건 이어폰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수많은 꼬임들도 그렇다. 이어폰줄이 좁은 공간에 있으면 꼬일 수밖에 없고, 사람 역시 공간을 공유하며 부딪히다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예방법은 없다. 해결법 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성실하게 푸는 것뿐이다. 정기적으로 말이다.

평일 저녁 카페에서 단단히 꼬여있는 두 사람이 만나 커피를 마셨다. 꼬인 줄을 풀기 위해 둘이 힘을 합치면 오히려 상황만 악화시킨다. 한 사람은 풀고 그 앞에 있는 사람은 천천히 푸는 시간을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예방법은 없고 해결법 뿐이니까.


사람들은 서로가 다니는 직장에서 줄을 잔뜩 꼬아와서는 저녁엔 친구를 만나 풀어버린다. 친구와 나는 오늘도 줄을 풀었다. 이 줄은 며칠이 지나면 또 꼬이겠지만, 괜찮다. 또 풀면 되니까. 그게 인생이려니, 인생이려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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