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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Jul 01. 2018

<변산>, 김고은의 전환점이 될 영화

영화일기 2018년 6월 26일

예상 가능한 삶이다. 고향으로 돌아가 살고 싶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야 할 것만 있으니까. 영화관이 없어서 기차를 타고 20분을 가야 하고, 햄버거는 롯데리아에서만 사먹을 수 있고, 몇개 없는 카페에 가면 옆 테이블의 손님은 친구이거나 그 친구의 어머니이거나 하니까. 그리고 그 사람들은 발목을 잡는 흑역사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1. 변산은 고향찬양힐링무비가 아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도시에 자리잡은 사람들이라면 <변산>를 보며 자주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비밀스러운 어젯밤에 대해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선미(김고은)는 "변산이 좁잖혀"라고 대답한다. 고향의 따뜻함 보다는 불편함이 더 강조된다. <변산>이 다른 힐링무비와 다른 점은 이 부분이다. 어떤 관객들은 <변산>을 보며 올해 초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를 떠올릴 수도 있다. 서울살이에 지친 주인공이 고향에 머물며 다시 힘을 얻고 간다는 플롯에서 둘은 일치한다. <리틀 포레스트>는 고향이 위로를 주는 작은 숲이 된다는 것을 전달하려 애쓴다. 고향에는 서울살이에 지친 주인공을 아끼는 친구들이 있고, 여유가 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전한다. <변산>은 오히려 그 반대다. 고향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주인공에게 '아, 고향이 사실 따뜻한 곳이었지'라고 생각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발목을 잡는 쪽에 가깝다. 결국 주인공 학수(박정민)의 마음은 속으로만 싫다고 말하던 것을 밖으로 적극적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으로 변한다. "너는 정면을 안 봐. 네가 무슨 래퍼야."라는 김고은의 말처럼 이 영화는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한 사람이 변화하는 이야기이다.


2. 가장 빛나는 김고은

연기를 대하는 김고은의 태도가 좋다고 칭찬했던 이준익 감독의 말처럼, 김고은은 <변산>을 통해 '나는 연기가 정말 좋다'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들린다. 김고은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장르와 배역을 다양하게 선태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늙은 시인의 마음을 빼앗는 고등학생(은교), 살인범과 싸우는 미친 여자(몬스터), 무협영화(협녀:칼의기억), 액션느와르(차이나타운), 선배 검사를 좋아하는 후배 검사(성난 변호사)까지. 혹자들은 <성난 변호사>에서 김고은의 여기는 어설프다고 했지만, 짝사랑하는 연기와 부끄러워하는 연기를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치즈 인 더 트랩>에 캐스팅되었고, 홍설을 맡아 호평을 받았고 <도깨비>를 통해 확실히 인정받았다. 여전히 김고은을 두고 연기 잘 못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단 <변산>을 보면 좋겠다. 김고은은 볼 때마다 더 잘하고 있다.


3. 이준익의 청춘 3부작이라...

<변산>을 청춘 3부작이라고 홍보를 하는데, 전작 <동주> <박열>의 인기에 덕을 보려는 홍보문구일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청춘 영화가 아니며, <박열>과 <동주>도 청춘영화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주인공의 나이가 청춘이면 그 영화는 청춘이 되는걸까. 영화의 주인공은 대부분 청춘인데? 그냥 '이준익 감독' 작품이라고만 홍보해도 좋을 걸 그랬다. 이준익 감독 정도 되면 이제 다들 알지 않나. <왕의 남자> <황산벌> <라디오스타> <사도> <동주> <박열> 이렇게 꾸준히 '괜찮은' 작품을 선보이는 감독도 드물다. 감독의 말처럼 적게 투자하고 적게 성공하지만 그 덕분에 소중한 영화 감독을 얻었다. 영화를 100m 달리기나 장대 높이 뛰기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마라톤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4. 이준익의 캐스팅

이준익 감독은 캐스팅을 잘하는 감독이다. 배역과 캐릭터가 어울리지 않는 미스캐스팅이 없었다. <왕의 남자>의 이준기, <황산벌>의 박중훈, <라디오스타>의 안성기와 박중훈, <사도>의 유아인, <동주>의 강하늘, <박열>의 최희서. 언급한 배우들의 필모그래피에서 이준익 감독의 영화는 큰 상을 안겨주거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번 변산에서 그 주인공은 김고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5. 아쉬운 노래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박정민의 훌륭한 랩에서 불구하고 인상 깊지 않은 곡이다. <변산>이 음악영화는 아니라 하더라도 음악은 중간 중간에 주인공의 감정과 상황을 설명하는 장치로 자주 사용된다. 그리고 적재적소에 들어가 웃음과 슬픔을 배가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입가에 멤도는 음악이 없었다. 관객들은 박정민이 도끼처럼 랩을 잘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가창력이 뛰어나서 <비긴 어게인>이 사랑받은 건 아니니까. 그러니 이건 래퍼가 아닌 작곡의 문제다.


6.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싶은 후반. 정말 개완할까.

전반과 중반까지는 오랜만에 제대로 웃긴 한국영화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후반의 몇가지 설정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특히 동네건달이 된 친구 용대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게 되는 계기와 그 이후의 이야기.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고, 사실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아직 남아있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꼭 그렇게 풀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 갯벌에서의 싸움과 뜻밖에 동창회를 하며 '개완하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마치 그 대사 하나를 하기 위해 그 전의 시퀀스들을 만들어넣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갯벌에서 용대와 싸우는 학수가 싸우는 대상은 용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것도 이해를 할 수 있는데...


별점: 3/5

김고은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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