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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Jul 31. 2018

변명이 듣고 싶은 <인랑>

김해경 : 영화일기

<인랑>에 대한 관객들의 혹평이 이어지고 있다.

"김지운의 커리어가 '인랑'으로 무너졌다" "인랑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다" "리얼을 재밌게 봤다면 인랑을 추천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애초에 김지운 작품이 아니었다면 실망할 일도 없었다.

<인랑>은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그리 못 만든 영화도 아니다.

한국영화 중에는 <인랑>보다 더 무슨말을 하는지 모르겠는 작품이 수두룩하다.

<리얼>과 비교하면 수작이다.(어디 리얼 같은 영화랑 비교를...)


<인랑>에 대한 실망은 "made by 김지운"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그가 만들었던 <조용한 가족> <반칙왕> <달콤한 인생> <악마를 보았다> <장화홍련> <놈놈놈> 등 장르 간판깨기의 달인이라는 별명처럼 그는 데뷔때부터 최근까지 모든 장르를 넘나들며 성실하게 인정받은 한국의 몇 안되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가요계에 비유하자면, 최동훈 감독이 SM이라면 김지운 감독은 안테나 뮤직 같은 사람이었다.

10명 중 2명 정도에게만 사랑 받지만, 그 2명에게는 인생작을 만들어주는 감독.


<인랑>은 안테나 뮤직이 난데없이 아이돌그룹을 만든 것처럼 어색했다.


우선 김지운의 색깔이 보이지 않았다. 김지운은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순간에도 농담을 빼먹지 않는데, <인랑>에서는 그의 농담이 보이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에도 농담을 했는데, 저 SF시대에는 아무도 농담을 안 하는 시대란 말인가. 세상에, 농담 없는 나라가 어디 있을까 싶다.


'빨간 망토와 늑대'에 대한 메타포는 흥미로웠지만, 그것도 초반뿐이다. 그 활용이 너무 직접적이라 <마녀>에서 조민수가 10분 동안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던 것이 떠올랐다. 이쯤에서 김지운의 또 다른 별명 "스타일리스트"가 생각났다. 스타일리스트란, 비효율을 감수할 줄 아는 사람이다. 직접적인 설명이란, 관객에게 이해를 해주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의 별명이 무색하다.


액션은 느리고 둔탁하다. 이건 취향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액션의 쾌감을 느끼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영화에서 수많은 매력적인 장면들을 많들어냈던 김지운 감독인데, 이 영화가 끝났을 때는 머리에 남은 장면이 없었다.


멋진 배우들이 많이 등장한다.

정우성, 한효주, 강동원, 김무열.

음...

하지만 연기력이란 무엇일까. 잘 웃고, 잘 울면 연기일까.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연기를 못해도 관객만 설득시킬 수 있으면 그만이다. 아무 대사를 안 해도 얼굴이 굉장히 양아치 같이 생겨서 가만히 의자에만 앉아있어도 그 사람이 관객을 설득한다면 그건 연기력이 좋은 것 아닐까. 그래서 연기력은 분명 감정표현도 포함하겠지만, 외적인 부분도 크게 작용한다. <인랑>에서 한효주, 강동원의 연기는 그저 괜찮은 정도에 머물렀다.


마지막 장면은 누가봐도 <달콤한 인생>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었다.

이병헌과 김영철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음악은 도대체 어디에 있나.

김지운 감독은 영화 작업에 있어서 음악을 정말, 아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독인데(놈놈놈, 달콤한 인생을 떠올려보자. 음악이 떠오르지 않나.) <인랑>에서는 그 부분이 비어있다.


김지운 감독은 무엇에 실패했는가.

변명이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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