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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Sep 28. 2018

90분 동안 그림을 그리다

연극 <아트> 를 보고

어느날 세르주는 그림 한 편을 사온다. 그림에는 하얀색이 그려져있다. 하얀색 배경에 하얀색이 그려져있다.

그림을 사온 세르주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 하얀색 바탕에 하얀색으로 보이지만 마냥 하얀 것만은 아니며, 흰색 줄이 몇가닥 그려져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세르주의 눈에만 보일 뿐이다. 들떠서 설명하는 세르주를 보는 친구 마크는 어이없는 웃음만 짓는다. "이건 흰색 판떼기잖아."


또 다른 친구 이반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말하진 않지만 그림은 흰색 도화지일뿐이다.


하지만 이 연극은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하는 줄거리가 아니라, 남자 셋의 우정을 풍자하는 내용처럼 보인다. 인간의 얄팍한 자존심과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말들에 대해.


하지만 내가 본 <아트>는 미술이 무엇이냐에 대해 말하기 위해 우정이라는 개념을 아주 잘 가져온 것처럼 보인다.


마크와 세르주와 이반은 과거까지 들춰내고, 서로를 헐뜯고, 욕한다.

그러다 이반이 "우리 오늘 저녁에 도대체 왜 만난거야. 이럴 거면 왜 만난거냐고."라고 말하며 흥분되었던 분위기는 사그라든다. 이미 깨진 것처럼 보이는 셋의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손을 내민 건 세르주였다.


마지막에 세르주는 마크에게 파란색 마커를 던져주며, 마음대로 낙서하라고 한다.

(세르주는 그 마커가 잘 지워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마크에게 건네줬다)


마크는 흰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스키를 탄 남자를 그렸다.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대각선으로 긴 줄을 긋고, 그 위에 졸라맨처럼 생긴 남자를 그렸다.



그 낙서는 나중에 완벽히 지워진다.



처음 세르주가 사온 하얀 작품과 연극이 끝났을 때의 하얀 그림은 겉으로 봤을 때는 같다.

하지만 그 그림을 보는 셋의 마음은 달라졌을 수밖에 없다.

세르주 혼자만 보인다고 우겼던 그 흰색 줄은 이젠 진짜 보이는 줄일 수도 있다. 마크에게도 이반에게도.

오직 셋만이 느낄 수 있는 그림이 만들어졌다. 그 그림을 사기 위해 2억이 필요했을까 싶긴 하지만.


셋은 90분 동안 그림을 그린 것이다.

우리가 반 고흐의 삶을 알고 그림을 보면 그것이 달리 보이는 건

그림 너머의 것들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처음에 세르주가 봤던 그 흰색줄은 어쩌면,

그 전에 한 차례 지워졌던 또 다른 친구들이 그은 줄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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