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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Feb 03. 2019

아버지의 목소리

연극 <사랑해요 당신> 배우 장용 인터뷰

문이 열리는 종소리가 들리고, 중저음의 목소리가 카페를 가득 채웠다. “길이 복잡해서 한참을 돌아왔어.” TV 드라마에서 아버지 역할을 도맡아 하던 그 목소리다. 딸의 건강을 걱정하던 목소리, 아들의 결혼을 응원하던 그 목소리. 배우 장용은 기자를 보자마자 선한 웃음을 지으며 오늘 길을 찾는데 헷갈리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가 연기한 TV 속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배우가 연기했던 극을 보며 매번 궁금했다. 자식을 배웅 보낸 다음 아버지는 홀로 남아 무엇을 했을까, 어떤 심정이었을까. 주인공이 아니었기에 알 수 없었다. 연극 <사랑해요 당신>에서 배우 장용은 또 한 번 아버지를 연기하지만, 자식 옆 아버지가 아닌 인간 한상우 역으로 무대에 선다.


배우 장용은 작년 초연한 <사랑해요 당신>을 통해서 오랜만에 무대에 복귀했다. 80년대 초에 연극 <오셀로>가 그의 마지막 작품이었으니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것이다. “항상 연극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할 기회가 있어야지. 드라마가 연극하고 겹치면 양쪽에 피해만 끼치게 되니까 어쩔 수 없었죠.” 65년도에 연극으로 데뷔했지만, 6년 뒤 TBC 공채 탤런트로 다시 연기자 활동을 시작했다. “군대를 다녀오니 같이 연극을 하던 친구들은 TV로 많이 진출했고,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죠. 지금도 연극이 경제적인 면에서 좋지 않지만, 그 당시의 연극은 지금에 비해 더 형편없었으니까요. 오히려 돈을 써가며 연극을 했으니, 돈을 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그리고 반드시 연극일 필요는 없었어요. 연기를 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는 50년 전 바람처럼 지금도 연기만을 하고 있다. 어떻게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냐고 묻자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연기가 재미있었어요.” 장용이 처음 연기의 재미를 알게 된 건 교내연극을 통해서였다. 그 당시 무대 위에 올라 친구들과 연기를 했던 때를 회상하는 목소리에서 조금 들뜨는 것이 느껴졌다. “<제17포로 수용소>라는 영화를 연극으로 남자들끼리 공연했어요. 포로수용소의 대장 역인 호피라는 배역을 제가 맡았죠. 그때 같이 연기했던 한 친구는 80년대까지는 같이 명동국립극장에 다녔는데, 언젠가부터 연락이 안 됐어요. 아마 이민을 간다고 말했던 것 같아요. 그때 같이 연극하던 친구들은 대부분 연락 끊어졌네요.”


<사랑해요 당신>에서 배우 장용이 맡은 한상우는 감정 표현에 서툰 무뚝뚝한 아버지다. “대본을 처음 보고 나와 비슷한 점이 많은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전형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그렇지 않을까요. 집 안에서는 자식들에게 자상하지 못하고, 밖에서는 가족들 생각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엄한 아버지.” 그의 말처럼 한상우라는 인물의 성격은 흔한 아버지의 모습일 수 있지만, 극 중에서 한상우가 감당해야 하는 사건의 크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성인이 된 자식들은 미국에 나가 살고, 연락도 쉽게 되지 않는다. 유일하게 함께 사는 아내는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고, 그런 아내에게 한상우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장용은 <사랑해요 당신>이 부부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 세대를 위한 연극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자식 세대가 보면 더 좋을 작품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님을 바라보잖아요. 그런데 이 연극은 부모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죠. 지금은 곁에 있는 건강한 부모님이 계시겠지만, 몇 년 후에는 어머니 아버지가 연극 속의 모습처럼 언제 아플지 모르는 일이에요. 극을 보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연극이 끝날 때가 되면 젊은 관객들이 훌쩍이는 소리가 더 많이 들려요.”


그의 말처럼 <사랑해요 당신>은 드문 소재의 연극이다. 노년 부부를 주인공으로 하는 공연이 많이 없기 때문이다. 장용이 작품에 출연하게 된 이유에는 그동안 다양한 배역을 맡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소위 말하는 로맨스 같은 작품을 못 해봤어요. 그런데 키 크고, 잘생긴 사람들만 연애하는 건 아니잖아요. 시켜주면 나도 곧 잘 할 텐데(웃음). 할리우드 영화만 봐도 중년의 연애 얘기가 소재가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50세만 넘으면 늙었다고 생각하니까요.”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하고 싶으냐고 묻자 “누가 시켜주겠냐”고 웃어 보였다. 그는 일 년에 두 편 혹은 세 편씩의 꾸준히 작품에 출연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연기가 부족하고, 더 잘하고 싶다고 말한다. “젊었을 때보다 더 노력하고 있어요. 대본을 읽을 때도 예전에 다섯 번 읽고 외웠으면, 이제는 열 번, 스무 번씩 읽어서 머릿속에 넣죠. 체력 관리도 중요하니까 아파트 안에 있는 헬스클럽에서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합니다. 젊을 때 허리를 다쳤는데 오른쪽 다리가 조금 불편해서 달리기 같은 건 못하고 걷기만 하죠.” 멈추지 않고 걷다 보니 어느새 연기 경력 50년이 넘은 그는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을까. 그는 담담하게 말한다. “장용은 참 좋은 배우였다. 장용이 나오는 작품이라면 믿고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말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네요.”


출처: http://theartpark.co.kr/201809_%EB%B0%B0%EC%9A%B0%EC%9E%A5%EC%9A%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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