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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May 11. 2019

생각보다 괜찮은 영화 <걸캅스>

영화 <걸캅스> 리뷰

생각보다 괜찮은 영화 <걸캅스>


<걸캅스>를 보기 전까지 두 가지 생각이 부딪쳤다. 하나는 걱정, 다른 하나는 기대였다. 한국 영화계에 추리물이 유행한 지 꽤 되었는데, 또 이렇게 비슷한 영화가 나오는 건가, 하는 걱정이 들었고(게다가 제목도 투캅스를 떠오르게 하는 걸캅스니까), 두 명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형사물 중에서는 처음인 것 같아서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하기도 했다. 소재도 디지털 성범죄라 시의적절하면서도 신선할 것 같았다.


-연기: 라미란&이성경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코믹하면서도 분노, 정의감, 억울함 같은 감정들을 표현해야 한다. 가장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은 배역은 라미란이 맡은 박미영 주무관인데, 감정 연기에서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부분은 액션 연기. 기본적으로 형사물이라고 했을 때 기대하게 되는 바가 있는데, <걸캅스>의 액션은 한참 아쉽다. 이건 배우들의 잘못만이라고 할 수는 없을 테지만, 대역을 쓰느라 뒷모습이 많이 잡히고, 날라차기를 하는 장면에서도 라미란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추리와 액션이라는 형사물의 쌍두마차에서 한쪽 바퀴가 힘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작품 내에서 라미란은 과거 그레꼬로만 레슬링 선수였고 그런 특징을 살릴 만한 장면이 여러번 있었을 텐데 마지막 저먼 슈플렉스를 제외하고는 두드러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그리고 이성경의 캐릭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정의감이 가득찬 인물로 영화 내내 화를 내는 캐릭터다. 마지막을 제외하고는 웃는 장면도 별로 없다.


-연기: 악역(위하준, 강홍석, 주우재 등)

주인공을 빛나게 하기 위해서는 악역도 그만큼 빛나게 하라. 하지만 <걸캅스>에 나오는 악역들은 그렇지 않다. 악역들의 저지르는 짓들이 몰카를 찍어다가 재미로 인터넷에 올리는 인간들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 악인을 선과 악이 공존하는 캐릭터로 묘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영화 내내 이들은 모일 때마다 참 어색했다. 정말 같은 팀이 맞긴한가.


-메세지

성공한 문법에 맞춰서 똑같이 찍어내는 건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게 최근 한국영화계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매년 발생하고 있는 편중현상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 <걸캅스>는 트렌드에 맞춰 제작된 영화일까 아닐까. 배급사의 사정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투자받기에도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성경은 <걸캅스 두번째 주연작이고, 라미란 역시 주연급으로 출연한 적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82년생 김지영>이 영화로 제작된다는 뉴스에 무차별 비판이 가해지는 국내 상황에서 페미니즘적 요소가 들어간 작품을 한다는 건 모험이나 다름 없다. 지금도 <걸캅스>에 대해서 평점 테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까운 시간 들여 별점 체크할 시간에 꽃에 물이나 주면 어떨까. 극 중 하정우, 성동일, 안재홍 등이 특별출연해 힘을 실어주는데 그 모습이 좋아보였고, 영화적으로도 재미있는 장면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성동일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한 방에 해결하는 모습은 조금 의아했지만.


지금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단어, 금지된 단어처럼 인식되는 이유에는 미디어의 잘못도 크다고 생각한다. 그 단어가 무엇이든 양지바른 공론의 장으로 끌어오는 곳이 중요한데, 출판계에서 꾸준히 관련 서적이 쏟아지는 중에도 방송, 영화계에서는 오랫동안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부정적인 이슈가 부각되고 나쁜 단어처럼 인식되어갔다. <걸캅스>는 이런 사회가 담고 있는 문제를 잘 지적했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성희롱과 그것을 인식못하는 남자 상사, 성범죄에서 가해자인 남자가 아닌 여자에게 초점이 가거나 피해자가 스스로에게 잘못을 묻게 되는 상황, 여성 대 남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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