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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Jun 01. 2019

[스포일러 주의]기생충 해석 by 김작가

영화 속 설정에 담긴 함의는 무엇인가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무지 많습니다.


기우(최우식)는 민혁(박서준)에게 받은 돌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진짜 상징적인 거네"

그렇다. 기우의 말처럼 <기생충>에는 상징적인 것들이 많다.

무서운 디테일을 보여주는 '봉테일' 봉준호 감독이 숨겨놓은 의미들을 해석해보자. 

(이 글에서는 배우명과 극중명을 혼용하여 사용합니다)


1. 4인가족 vs 4인가족

봉준호 작품 중에는 완전한 구성원의 가족이 없었다. <마더>에서는 아버지가 없었고, <괴물>에서는 할머니, 어머니가 없었으니 세대를 이어 어머니가 없었던 셈이다. 이번에는 4인 가족 대 4인 가족으로 인물 구도를 만들었다. 이건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두 가족이 확실히 비교되도록 한 봉준호 감독의 의도다. 그래서 두 가족의 상황이 처절하게 비교되는 장면들이 많다. 특히 폭우가 오는 장면이나 그 다음 날이 가장 인상적이다. 박사장네 가족이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면서 편하게 잘 때, 기우네 반지하는 물에 잠긴다. 박사장이 오르가즘을 느낄 때, 달동네 사람들은 물에 잠겨 생사를 오간다.


2. 인디언의 의미

인디언들은 자신이 살던 땅을 미국인들에게 빼앗겼다. 때론 무력적으로, 때론 계획적으로. 그렇다면 그 당시 인디언들에게 기생충은 누구였을까? 당연히 미국인이었지. 그렇다면 지금은? 미국의 트럼프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며 이민자들을 몰아내려고 한다. 이민자로 인해 만들어진 미국이 이제는 그들이 기생충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큰 땅 밖으로 몰아내려고 한다? 그건 인디언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공생을 선택하지 않고 철저히 짓밟았다. <괴물>에 이어 또 한번 미국을 비판하는 봉준호의 메세지가 숨어있다. 한 가지 무서운 점은 <기생충>의 마지막에는 인디언의 모자를 쓴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게 된다는 거다. 지하실 남자의 얼굴은 마치 인디언 분장처럼 붉은 피로 덮혀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생을 선택하지 못한 이들의 파멸이다. 그렇다면 영화 초반에 나왔던 와이파이에 비번을 거는 행위는 공생을 위해 옳지 못한 일일까?


3. 속마음

속 마음이라는 건 <기생충>에서 중요한 테마다. 속 마음이 드러나는 순간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데, 박사장이 불쾌해하는 순간은 기태가 사모님을 그래도 사랑하시죠라며 묻는 순간이다. 그건 속 마음을 묻는 질문이다. 선을 넘어야 하지 않을 사람이 선을 넘는 질문을 한 거다. 지하실 남자와 기태 역시 숨겨놓았던 본심을 표출하는 순간 사고가 발생한다. "냄새가 선을 넘어"라는 말로 본심을 드러냈던 박사장, 그리고 그 말 때문에 결국 기태는 표정이 달리지기 시작한다. 과연 기우가 본 다혜의 노란 다이어리에는 무슨 내용이 적혀있었을까. 어떤 속 마음을 봤길래 기우는 수석을 끌어안고 자신이 모든 걸 책임지겠다며 지하실로 내려갔을까.


2. 위 vs 아래

봉준호 작품들에는 유난히 수평으로 뛰어가는 장면들이 많다. <괴물> <옥자> <설국열차> <플란다스의 개> 등등 뭐 많다. 그건 감독이 뛰어가는 장면에서 벅차오름을 느낀다고도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는데, 이번에는 그런 장면이 없다. 대신 그 자리를 메운 건 위에서 아래로 가거나 아래에서 위로 가는 장면들이다. 최우식은 박사장네 집에 가기 위해 끝없이 오르막을 올라야 하고, 박사장이 자는 틈에 도망치기 위해서는 반대로 끝없이 계단을 내려와 반지하까지 내려가야 한다. 계속 내려간다 계속.


11. 수미쌍관

오프닝은 기우네 집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시작한다. 엔딩 역시 기우네 집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그 사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결국엔 제자리다. 달라진 건 아버지가 도망쳤고, 기정이 목숨을 잃고, 기우는 뇌를 다쳐 수술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창가에 걸려있던 옷걸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옷걸이에는 양말들이 걸려있었는데, 엔딩장면에서는 양말이 보이지 않는다. 그건 해체된 가족을 의미한다고 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달라진 점은 기우가 꿈을 꾼다는 것이다. 돈을 벌어서 그 집을 사서 아버지를 구해내겠다는 꿈. 그러나 그 꿈을 쉽게 가능할까. 어쩌면 기우의 망상은 아닐까. 가난한 사람이 계획이 없어서 가난했던가?


3. 지하 vs 반지하

영화를 보기 전에는 몰랐던 한 가족이 더 등장한다. 가정부(이정은)의 가족. 기우네 가족과 가정부 가족은 둘 다 반지하에 산다는 건 공통적이지만 다른 점이 너무 많다. 가정부의 남편인 지하실 아저씨는 자신이 여기서 태어난 것 같기도 하다며 지하실에 완벽히 적응했다. 지하실에 살고 싶어하며 바깥 세상에 대한 소식은 잡지(미디어)를 통해서만 접한다. 세상과는 완벽히 차단된 상태에서 단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캐릭터인 셈. 반면 반지하에 사는 기우네 가족은 반지하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다. 그 노력 끝에 "여기가 우리집이지"라고 말할 정도로 신분 상승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박사장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랫사람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박사장은 "선을 넘는 사람들이 제일 싫다"고 반복적으로 말하는데 기우네 가족은 박사장네 가족의 삶에 안착한 듯하지만 결코 그 선을 넘어가지 못한다. 위와 아래로 나누어진다. 기우는 다혜가 누워있는 침대 아래(강아지와 동등한 위치), 기정은 거실 테이블 아래, 아버지 기태는 지하실로 내려간다. 박사장네 가족과 함께 있으면서 동등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4. 박사장을 대하는 두 가장의 태도

박사장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지하실 남자와 송강호는 큰 차이가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지하실 남자는 미디어를 통한 편견으로 박사장을 "리스펙!"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4년이 흘렀기 때문에 칼을 누구에게 꽂아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결국 같은 처지의 기우네 가족에게 칼을 꽂는다. 분명히 지하실 남자의 공격은 의도적이었다. 기정과 다솜이 함께 있었지만 칼은 같은 불우이웃 기정을 향했다. 하지만 박사장은 지하실 남자를 알지도 못한다. 남자는 "리스펙!"라고 말하지만 박사장은 "절 알아요?"라고 할 뿐이다. 기생과 숙주 관계는 이토록 일방적이다. 무엇을 위해 충성한단 말인가. 그리고 박사장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피흘리는 남자의 몸을 치우고 차키를 가져간다. 역겨운 냄새가 난다는 듯 코를 막은 채. 송강호의 칼은 마침내 박사장을 향한다. 무계획적인 계획이었지만 자신이 죽여야 할 대상을 명확히 알아차렸다고 생각한 거다.


5. 가정부를 죽인 건 누군가?

지하실 남자는 자신의 아내를 죽인 사람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칼을 들었다. 그렇다면 아내를 죽인 건 누구인가? 표면적으로는 기우네 가족이 죽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정말 그런가? 남자가 지하실에 내려가서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이 모든 일들은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누구 한 명의 잘못이라고 볼 수 있나. 그런데 마치 사람들은 자신이 죽여야 할 적이 누구인지를 안다고 생각하며 돌진한다.


6. 부유함을 강조하는 장면들

박사장네 가족의 부유함은 짜파구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짜파구리에 그 귀한 살치살을 넣어서 해먹는 건 라면에 전복을 넣어서 먹는 것과 비슷한 과잉인 셈이다. 이런 투머치는 영화 속에 숨어있다. 가족이 고작 4명인 집안의 주방 테이블은 지나치게 커서 테이블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풀샷으로 잡아서 인물보다 여백을 더 많이 보여준다. 그만큼 사용하지 않는 곳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하실에는 아들의 우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이고, 4인 식구의 식기는 지나치게 많아서 혼자 청소할 수가 없다. 심지어 거실 테이블 아래에도 세 명의 가족이 들어가도 숨을 수 있을 정도로 넓다.


7. 영어 쓰는 사모님

사모님은 대화를 할 때 영어를 섞어쓰는데 그 발음이 영 시원찮다. 실제로 미국에 살다온 사람이 아닌 사람이라는 뜻. 기우가 제시카에 대해서 처음 말하며 일리노이주립대라고 말을 할 때 사모님의 동공이 흔들린다. 영어를 종종 섞어쓰는 방식은 가정부 역시 사용하고 있는데, "가끔은 자기가 주인 행세를 할 때도 있어"라는 기정의 말처럼 가정부는 사실 기우네 가족과 다를 바 없는, 스스로 불우하다고 말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여보 fresh한 공기 좀 마셔야 해" 세 명의 가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만들어질 법한 세 가족의 형태인 거다. 부자가 되는 데 성공한 박사장네 가족, 부자를 존경하며 동화되고 싶어하는 서민, 비도덕적으로 성공을 향해 나아가다가 잘못을 자각하게 되는 가족. 언어를 다르게 쓰고, 언어를 흉내낸다고해서 교양스러워지는 게 아닌데.


9. 선을 넘는 사람이 제일 싫어

박사장은 유난히 선을 강조한다. 윤기사를 해고했던 이유도 자신의 벤츠에서 여자와 잤다는 이유였다. 선만 안 넘으면 문제가 없다는 건데 그 선이라는 당연히 기태에게도 해당된다. 기태가 있어야 할 곳은 낮은 곳, 박사장이 있어야 할 곳은 높은 곳, 상석이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그 선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건가 질문하게 된다. 박사장은 모를 여자의 팬티를 서류봉투에 넣으며 불결한 척하지만 자신의 아내와 관계를 가질 땐 그 팬티를 보면 더 흥분이 될 거라는 등 본성을 보여준다.


10. Pretend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pretend"하고 있다. 다혜가 자신의 동생이 예술가인 척 연기를 하고 있다고 뒷담화를 하는데, 사실 연기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다. 가정부는 남편을 지하실에 숨겨놓고 아닌 척하고, 기우의 가족들은 전부 연기를 하며 박사장네 집안에 들어오는 데 성공했고, 박사장네 가족도 역시 마찬가지다. 유일하게 연기하지 않는 인물은 지하실 남잔. 그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환경이다. 그는 혼자 지낸다. 다른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함께 어울려 살 때, 그는 혼자 있기 때문에 가면을 쓸 필요 조차 없는 거다.


12. 비가 오고 난 위의 상황

비가 오고 두 가족이 각자의 자리로 간 다음 날 비교되는 장면들이 재미있다. 이선균의 가족들은 아들 다솜이의 생일 파티를 하느라 번개를 하는데 성악가도 오고, 사람들 예쁘고 옷도 입고 온다. 바글바글. 그리고 보여지는 기우네 가족의 상황은 무료 급식, 체육관에서 모여서 단체 숙식. 특히 조여정이 옷장에서 옷을 고르는 장면 뒤에 이어지는 기우네 가족들이 쌓아놓은 옷더미에서 옷을 고르는 장면은 실소를 자아낸다.


13. 박사장네 가족과 기우네 가족은 무엇이 다른가, 그 둘은 적인가?

이 모든 사건은 민혁이 기우에게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기우가 열심히 살아서가 아니고 기태가 계획을 짜서도 아니다. 아는 사람에 의해서 우연히 기회를 얻었고, 그 기회를 잘 살렸기 때문에 가족들이 전부 취업을 할 수 있게 된 것. 과연 박사장은 어떻게 사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는 IT사업을 하는 사장이며, 부모님에 대해서도 정확히 언급이 되지 않고, 이사 오기 전에는 부잣집에 살지 않았던 걸로 봐서 재벌 가문은 아니다. 그렇다면 IT사업 성공으로 새롭게 부상한 신흥재벌인 셈인데 그건 그의 성공은 기회와 노력이 얼마나 섞인 성공일까.


14. 다솜 vs 지하실 남자

다솜이의 그림을 보고 기우는 "침팬지를 그린 거죠?"라고 묻는데 사모님은 "자화상"이라고 대답한다. 사실 그 그림 속 인물은 지하실에 살고 있는 가정부의 남편. 나중에 지하실 남자의 존재를 알게 되는 순간 가정부는 오랜만에 그를 만나 우유와 바나나를 준다. 침팬지가 먹는 바나나, 그리고 아이가 먹는 우유. 다솜이와 지하실 남자는 몇가지 부분에서 비슷한 점들이 있다. 1학년 때 귀신을 보고 경기를 일으켜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다는 것, 그 다음부터 인디언 놀이를 하거나 자기 공간에 들어가 스스로 고립되기도 한다. 지하실 남자 역시 대왕카스테라 사업이 망하며 지하실에 살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스스로 갇혀있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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