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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Jul 03. 2019

깨지면서 단단해지는 자아

김작가의 영화로운 일기: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1.

집으로부터 멀리. 모두 예상하듯 그 집은 미국에 있는 그 집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인 집, 그보다는 안락함과 익숙함을 뜻하는 정신적인 안식처에 더 가깝다. <엔드게임>에서 토니 스타크는 자신을 희생하며 죽었다. 부모가 없는 피터 파커에게 토니는 아버지와 같았다. 토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토니가 시간이동을 하는 위험한 일에 가담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계기 역시 피터 파크였으니까. 성인이 되면 집을 떠나 독립을 하듯, 피터는 집을 떠났다. 하지만 때가 되면 찾아오는 그런 이야기가 슬픈 이유는 모든 것이 피터에게는 갑작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언맨과는 제대로된 인사조차 하지 못했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피터에게 묻는다. "아이언맨의 후계자는 누구죠?" "스파이더맨 당신이 맞나요?!" 10대의 피터에겐 모든 것이 어려운 문제다.

2.

나이가 어리다고 자신은 준비가 안되었다고 말하지만, 결국 가장 훌륭하게 해낸 사람은 어린 피터 파커다. 쿠키를 통해 밝혀지는 닉 퓨리로 변신했던 스크럴족을 포함해 해피, 담인선생님, 미스테리오 모두 어른이다. 그들 중 피터만큼 훌륭히 수습한 사람이 누가 있었나. 선생님은 우왕좌왕했고, 미스테리오는 거짓으로 영웅이 되려했으며, 닉퓨리였다고 속지 않았을 미스테리오의 연출에 속아 넘어간다. 결정적인 역할은 피터 파커 그리고 MJ.

3.

난 이 영화가 어쩌면 가짜뉴스를 다루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미스테리오와 그의 동료들은 환상을 조작하는 기술을 이용해 가짜 재난을 만들어낸다. 탄탄한 스토리를 짜고, 과학의 힘을 빌어 괴물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이 죽건 말건 개의치 않는다. 가짜뉴스와 가짜 괴물에는 비슷한 점이 많다. 첫 번째는 사람들이 긴가민가하는 이야기에 살을 붙인다는 것. 미스테리오는 다중우주에 엘리멘탈이라는 살을 붙여 진짜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터무니없는 가짜보다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가짜가 더 리얼한 법이다. 두 번째는 약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한다는 거다. 미스테리오는 말한다. "사람들은 믿을 것이 필요해" 엔드게임 사건 이후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도 없는 지구인들에게 약한 마음이 존재했고, 미스테리오는 그걸 이용한다. 가짜뉴스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몸을 해부하면 검은 색 피가 나온다. 그게 욕망이다"라는 감독 김기영의 말처럼, 미스테리오는 그 검은색 피를 이용하기 위해 환상을 조작한다.

4.

<스파이더맨: 파프롬홈>은 '사람은 언제 성장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큰 사건을 보자면 피터가 사고를 치고 수습하는 얘기로 요약되는데, 초중반까지의 피터는 문제를 회피한다. 자신이 대답해야 할 문제를 외면한다. 다른 사람이 대답해주길 바라고, 자신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결정을 유보한다. 유보하는 행위는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결국엔 자신 밖에 대답 못하는 문제다. 피터가 그토록 망설였던 이유는 깨지길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피터는 좋아하는 MJ에게도 마지막에 가서야 고백을 하는데 그 전까지는 계획만 잔뜩 세우고 실천하지 못한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지 않으면 실패하지도 않지만 성공하지도 못한다. "다음 아이언맨이 누구냐"는 질문을 계속 피하며 자신은 이웃들을 지키는 영웅일 뿐이라는 징징거림 역시 실패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피터가 MJ에게 선물로 주었던 유리목걸이(블랙달리아)는 깨지지만 MJ는 "깨지니까 더 아름다운데?"라고 말한다. 영화의 메세지를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대사다.

5.

토니 스타크는 자신이 죽게 될 것과 피터가 살아날 것을 알고 있었을까. 자비스말고 이디스라는 OS가 들어간 스마트 선글라스를 피터는 해피에게서 전달 받는데, 생전에 전해받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이디스는 "난 죽어서도 영웅"이라는 뜻이라는 걸 보니, 아이언맨은 어디까지 예측하고 있었던걸까 싶다.

6.

쿠키에 나온 떡밥 하나. 닉 퓨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스크럴족이 있는 기지? 아지트? 비행선 같은 곳의 내부에서 바캉스 복장으로 지시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곳은 우주인가, 우주라면 무엇을 위해 스크럴족을 지구에 두고 자신은 그곳에 있는 걸까.

7.

피터의 반 아이들의 조합을 보면 새롭다. 전통적으로 짝이 되는 백인남자-백인여자의 익숙한 조합은 없고, MJ가 피터보다 키도 더 크다. 백인 여자 역시 베티(<블랙미러 시즌5: 레이첼, 잭, 애슐리 투>에서 레이첼 역을 맡은 앵거리 라이스다) 한 명으로 그와 짝이 되는 사람은 피터의 단짝 친구인 네드다. 처음에는 네드가 너드 같은 관심만 보이고 베티는 거절하는 스토리로 흘러가는 줄 알았지만, 예상을 뒤엎었다. MJ를 두고 경쟁하는 남자애 역시 아시아 계열에 히잡을 쓴 아랍권 여성도 있으며, 피터에게 시비거는 남자애 역시 라틴아메리카 계열로 보인다. 꾸준히 여성 캐릭터의 확장을 보여주고 인종에 따른 고정적인 클리셰를 극복했던 마블 시리즈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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