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벽을 좋아한다. 너와 나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벽을 좋아한다. 그 벽은 관계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그 벽에 몰래 창을 하나 내어놓는다. 허락된 사람들은 그 창의 위치를 알고 있다. 허락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시간이 하고, 태도가 한다.
나는 모르겠다는 말을 좋아한다. 그 말에는 신중함이 있고, 진심이 있다. 아무 말에나 고개를 끄덕이고, 다 알겠다고 말하는 사람에게서 고민을 느낄 수 없다.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에 대해 확신하는 40대 마케터를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감독보다 영화를 더 잘 아는 척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과거만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사람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은 것 말고 다른 욕심은 없어 보인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원래 그렇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 말이 태도가 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