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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Aug 03. 2019

이상의 수필집 <산촌여정>을 읽고

1. 죽은 사람이 남긴 수필을 읽는 일은 기분을 야릇하게 만든다. 마음이 간질거린다. 이상의 수필집을 읽었다. 100년 전에 죽은, 천재시인이라 불리는 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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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난해한 작품을 선보였고, 연애사도 많이 알려졌고, 건축과 출신에 요절했으며, 다방 주인까지. 수많은 이야기가 이상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오곤 했는데 난 궁금했다. 진짜 이상은 어떤 사람일까. 그래서 그의 수필이 궁금했고, 이미 사라진 책을 파는 서점, 알라진 중고서점에 가서 수필집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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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와, 이상의 필력이 역시 대단하구나 같은 감상은 느끼지 못했다.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한자어가 많아서 의미가 명확히 와닿지 않았고, 수필의 소재 역시 평범하다 느껴질 정도. 하지만 그래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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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상이 겪었던 일화를 읽는데 어쩜 지금과 달라진 게 하나 없을까 싶었다. 예를 들면 이상이 다방에 갔다가 나온 일화가 나오는 '예의'라는 편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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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누구나 다 겸손하다. 그리고 다 같이 부드러운 표정을 하는 것이다. 신사는 다 조신하게 차를 마시고 숙녀는 다 다소곳이 음악을 즐긴다. 결코 이웃 좌석에는 들리지 않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담화한다. 직접을 떠나서 투쟁을 떠나서 여기서 바뀌는 담화는 전면한 정서를 풀 수있는 그런 그윽한 화제리라. 다 같이 입을 다물고 눈을 홉뜨지 않고 슈베르트나 쇼팽을 듣는다...익숙한 곡조라 하여 휘파람으로 합주를 한다거나 해서는 아주 못쓴다. 왜? 그렇게 하는 것은 이곳의 불겅문인 예의를 꺠트림이 지극히 큰 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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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나 쇼팽을 혁오나 새소년으로만 바꾸면 을지로의 LP카페에 다녀온 어떤 에디터의 공간 리뷰라고 해도 믿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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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를 느끼고 싶었던 이상은 옆 테이블에서 예의없게 떠드는 바람에 결국 카페 밖으로 나오게 되는 내용이다. 사건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는데 이상이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디테일하게 묘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실수'라는 수필에서는 인력거를 타고 무례하게 손가락질을 하는 외국인에 대한 감상이 나와있는데, 저들의 손가락질이 왜 무례인가, 무례라면 난 어떻게 하는 게 옳은가, 그렇게 해도 되는가 안 되는가 마음 속으로 갈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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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책을 읽고 나니 상수동에 있는 제비다방에 갔다가 오는 길에 곤집에서 황태막국수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날씨가 너무 더우니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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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산촌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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