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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Feb 14. 2020

가까스로 몇 번 웃기다, <정직한 후보>

영화는 2월이 제철이다. 해외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거머쥔 영화들이 국내에서 개봉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 <정직한 후보>를 봤다. 피곤하면 팝콘무비가 땡긴다. 팝콘은 안 사먹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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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과 트뤼포의 대화가 생각났다. "저기서 저 여자의 대사를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왜 멀리서 잡지 않고 가까이서 잡았나요?" 한 컷 한 컷 의도 없는 컷이 없다는 것이 영화 감독들의 공통된 고민이라고 하지만, <정직한 후보>는 그런 걸 느끼기 힘들었다. 모든 상업영화가 다 이렇지는 않다. 장면 연결에 불필요한 컷이 너무 많았다. 불필요의 기준은 의미와 목적이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이것도 어떤 평론가가 설명한 건데, 남편의 사랑이 식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굳이 남편의 속마음이나 혼잣말을 나레이션으로 넣을 필요는 없다. 남편과 아내가 함께 걸어갈 때 남편의 시선이 지나가는 여자를 향하게 만들면 된다. 이런 게 말하자면 영상 언어의 적절한 예시가 아닐까. <정직한 후보>의 특정 장면을 굳이 꼽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곱씹을 장면이 없다. 이것 외에도 문제는 많다. 주인공은 성장형 캐릭터인데, 그것이 애매하다. 성장을 한 건지 만 건지, 그래서 성장 시켜주는 촉매제는 무엇인지, 장치도 애매하고 주변 인물도 애매하고, 진지해야 할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 깔리고, 전개는 지나치게 과정되어있다. 이게 정말 <김종옥 찾기>의 감독이었다고? 믿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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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보다 관대한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혹평 of 혹평을 했던 <걸캅스>에도 단점이 크지만 장점도 있다고 생각했다. 실험적인 시도가 있거나, 신선한 시나리오이거나, 전에 없던 캐릭터라면 박수쳐줄 수 있다. 그런데 <정직한 후보>는 어느날 거짓말을 못하게 되었다는 흔한 컨셉을 사용하면서, 조연들은 들러리로 소비되고, 주인공은 무능하게 그렸다.  나름 정의로운 듯하면서 너무 패륜적이다. 주인공에게 악동같은 면이 있는 건 괜찮지만 악해서는 공감하기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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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단 한 가지 장점은 있다. 라미란이 코미디 연기를 맛깔나게 잘한다. 혹평한 영화치고 다섯 번 정도는 웃었는데, 모두 라미란의 안타였다. 갑자기 거짓말을 못하게 되면서 속사포처럼 발언하는 장면들은 쾌감을 주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걸 몇번 하고 말더라. 왜지? 그 재미있는 걸 왜 하다가 말아? 차라리 라미란의 독주를 처음부터 끝까지 밀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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