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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May 24. 2020

구멍난 시스템 속 사람들, <더 플랫폼>

#더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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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이라는 애들은 모이면 서열 정리부터 정한다. 어렸을 때는 노골적으로, 늙었을 때는 은근히 한다. 자신의 우위를 증명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물리적인 힘이거나, 돈이거나, 나이거나, 지위이거나, 인기이거나. 그렇기 때문에 인간사회는 계급사회다. <더 플랫폼>은 계급이 매달 달라지지만 기준이 없다면 어떤 곳이 될까 실험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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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덩이'라고 불리는 곳은 감옥이다. 누구는 자기관리센터 비슷한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지만 실상은 교도소다. 다른 교도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각 방이 수직으로 나열되어있다는 것이다. 두 명씩 들어가는 방 중앙에는 네모난 구멍이 뚫려있고 진수성찬이 차려진 남도50첩 반상 같이 식사가 1층부터 최하층까지 내려간다. 1층 사람은 마음껏먹지만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음식이 남지 않기 떄문에 굶어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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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구덩이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아이템을 선택할 수 있는데 주인공은 책을 선택했다. 세르반테스가 쓴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다. 같은 방 룸메이트는 식칼을 가져온 할아버지다. 강아지를 선택한 사람도 있고, 밧줄을 선택한 사람도 있다. 돈키호테와 책이라는 설정이 의미하는 바는 각각 괴짜스럽고 저돌적인 면과 지성인을 상징한다.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은 주인공이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어떤 발악을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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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감독은 <더 플랫폼2>를 만들 것 같다. 왜냐고? 영화를 보면 안다. 오비오(이건 영화 본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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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상에 선한 사람이 있고 악한 사람이 따로 있나. 실제로 그런 분류가 가능한지도 모르겠지만, 무의미해 보인다. 악인과 선인은 시스템에서 길러지고 만들어진다. 선한 행동이 있고 악한 행동이 있는 것이며,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건 잘된(혹은 잘못된) 설계된 시스템이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 같은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영화 <조커>에서 아서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며 범죄를 저지르고, 아서를 괴롭힌 금융인들은 뭐라 하는 사람이 없으니 범죄를 저지른다. 시스템이 손놓고 있는 동안 인간은 나쁜 행동을 하고, '그래도 된다'는 생각이 들면 행위를 반복한다. 이건 뉴스에 나오는 범죄자들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면 계속 그렇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브레이크 없는 시스템은 오류를 일으키기 쉽다.  시스템이 없거나, 시스템이 엉망진창이라면 더 위험하다. 좌초할 수밖에 없다. 아부하는 사람이 생기고, 비선실세가 생기고, 공천장사하는 사람이 생긴다. 구멍한 시스템의 <더 플랫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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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많은 분들이 <더 플랫폼>을 보고 <설국열차>와 <큐브>를 합쳐놓은 것 같다고 하는데, 설정 자체는 맞는 말이지만 그렇게 예상하고 보면 지루하게 느낄 수 있다. 그래도 두 영화에는 어느정도 엔터테인먼트가 있고 숨쉴 구멍이 있지 않나. <더 플랫폼>은 그것들보다 훨씬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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