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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Jun 01. 2020

주말의 영화

[리뷰]주말에 본 영화 6편에 대한 짧은 감상

1. <본아이덴티티>를 봤다. 예전에 한 번 봤었다. 시간이 지나니 무슨 내용이었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액션영화는 '본 시리즈' 이전과 이후로 갈린다는 것만 기억나고 일체 기억나지 않았다. 이 정도의 기억력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염려된다. 아무튼 <본 아이덴티티>는 액션영화다. 007 시리즈와 같은 슈퍼 첩보원이 등장하지만 캐릭터의 설정이나 상황은 정반대다. 제이슨 본은 기억을 잃었고, 첨단 무기도 없고, 한 사람만 사랑하지만 007은 돈도 많고, 여자도 밝히고.. 뭐 그렇다. 아무튼 오랜만에 액션영화를 봐서 한국의 제이슨 본이라고 하는 원신연 감독의 <용의자>를 봤다.



2. 공유가 나오는 영화는 대부분 봤는데 <용의자>를 안 봤었구나. 액션영화에서는 주인공도 대사가 별로 없다. 몸이 힘들기 때문에 시나리오 작가가 미안해서 대사를 안 쓴 건지, 아니면 수다스러운 액션 히어로는 멋이 안 살아서인지는 모르겠다. <용의자>의 주인공은 살인자로 오해받는 북한 특수요원 출신의 탈북자다. 영화 속 탈북자들은 왜 다 잘생긴걸까. 김수현, 현빈, 공유 또 누가 있더라...정우성도 있네. <베를린>에서 하정우가 멋드러진 근거리 격투 액션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공유가 하니까 느낌이 또 다르다. 길쭉한 팔다리로 시원시원하게 내지르는 액션이 볼 만하다. 카메라 워크는 과하다 싶었다. 정적인 화면은 거의 없이 계속 움직이는데, 흡사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축구공을 급하게 따라잡는 카메라 같았다. 정신없었다. <용의자>는 그래도 400만을 넘긴 영화다. 잘 된 영화를 보니 망한 영화도 한번 봐야겠다 싶었다. <도리화가>를 봤다.


3. <도리화가>를 봐도 되는 사람은 딱 세 사람이다. 수지의 팬, 수지의 친척, 수지의 고교동창...이건 헛소리다. <도리화가>는 여러 면에서 실패했다. 우선 판소리 영화에서 가장 큰 재미는 '듣는 재미'다. 판소리를 듣는 재미. 이건 뮤지컬을 보기 위해 뮤지컬 영화를 보는 것과 똑같은 이유다. <도리화가>에서 성장캐를 맡은 주인공은 진채선인데 처음부터 마지막 무대까지 드라마틱한 변화를 느끼기가 힘들다. 첫 소리를 들었을 때도 '읭?' 싶고 마지막 무대를 봤을 때도 처음보다야 낫지만 '읭?' 싶다. 근데 이건 배우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애초가 판소리 영화를 하는데 판소리를 배운 적 없는 가수를 캐스팅한다는 것부터가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보통 관객들은 판소리를 많이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기대치가 낫았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반대가 아닐까. 내가 들어본 판소리도 손에 꼽을 정도인데 TV에서 명창이라고 하는 분들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오히려 평균치가 높게 책정되어있기 때문이다. <도리화가>는 최초의 여성 소리꾼이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한 남자를 사모하는 여성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이 부분도 굉장히 실망스럽다. 게다가 류승룡을 사모하는 수지라니...


4. 판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볼 거라면 차라리 <판소리 복서>를 보자. 10배는 더 재미있다. <판소리 복서>는 세계 최초로 판소리와 복싱을 접목해 세계 제패를 꿈꾸던 병구의 이야기를 다룬다. 세계 제패 같은 소리를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프로 자격을 박탈 당하고 파리만 날리는 체육관에서 잡일이나 하고 있다. 이 영화는 <뎀프시롤: 참회록>이라는 같은 감독의 단편을 장편화 한 것인데, 코미디 영화이며 내 코드에는 맞았다. 꽤 웃기더라. 그리고 해리의 연기가 참 자연스럽다. 엄태구의 순박하고 귀여운 연기도 꽤 어울린다. 사람 한 명 금방 죽일 것 같은 목소리와 대사 내용의 부조화가 웃기다. "저...관장님...전단지 다 돌렸는데요...?" 뭐 이런 거. 중간중간에 들어갈 법한 나레이션을 판소리로 채워넣었는데 그 부분이 신명난다. 마지막 판소리 복싱의 정체를 보면 띠용하게 된다.


5. 코미디 영화하면 <바람>을 빼놓을 수 없다. 정제되지 않은 양아치 고등학생들의 폭력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잘 보면 이상하게 폭력적인 장면은 없다. 담배 피는 장면은 많은데 결투씬이 거의 없다. 거의 말로 싸우다가 친구가 되는 전개다. 유일하게 싸우는 장면에서는 살면서 처음 싸워본 것처럼 멋없게 싸운다(대부분의 남자 싸움이 이렇긴 하지만). "그라믄 안돼" 같은 명대사와 명장면이 많은 영화. 정우의 코미디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훌쩍 간다.


6. 나이가 든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법적으론 성년이지만 미성년과 같은 정신연령이랄까. <미성년>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김윤석은 어른이 보여줄 수 있는 찌질함을 다 보여준다. 비주얼은 <황해>의 개장순데 하는 짓은 바람 피다 걸려서 딸한테 도망치는 아빠. <미성년>은 불륜을 다룬다. 하지만 불륜을 당사자나 성인의 입장이 아니라 두 딸의 입장, 두 여자 고등학생의 입장에서 본다는 점이 다르다. <미성년>에서는 자식이 주변인이나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다. <킹덤> 시즌1에서 연기력 논란이 있었다가 시즌2에서 비약적으로 성장한 김혜준 그리고 염정아의 연기가 놀랍다. 특히 염정아는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였던 것처럼 연기를 한다. 딸과 딸 친구 앞에서 강해 보이려 하다가, 혼자 있을 때 바로 무너지고, 남편 앞에서는 감정을 누른 채로 분노하다, 바람 핀 여자를 만났을 때는 동정심과 분노를 함께 표출한다. 씬마다 감정이 롤러코스터처럼 왔다 하는데, 감정 버튼을 켜고 끄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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