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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Dec 15. 2020

매너리즘에 빠졌다

20201215 월요일

요즘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다. 재미와 의미를 찾지 못하고 붕 떠버린 기분이다. 산책을 하면서 이런 저런 고민을 생각을 했는데, 아마도 '의미 찾기'란 평생 어른들이 고민인 것 같다. 일의 의미, 하루의 의미, 직업의 의미, 내가 하는 행동의 의미, 존재의 의미, 너의 의미, 나의 의미.


아마도 지금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은 그런 의미 찾기를 다 겪었을 거다. 존재가 희미해지고, 옅어지고, 무의해지고, 사라질 것만 같은 길을 걸으며 조금씩 늙어갔을 거다. 열심히 살다 보면 타인의 인정과는 무관하게 "나는 뭐하는 사람이지? 나는 왜 살지? 뭣 때문에 열심히 살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고 멍해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영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의 남자 역시 그렇다. 그 남자는 성실한 이발사로 말도 없이 손님의 머리를 깎아주며 돈을 번다. 하지만 본인을 이발사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결혼 생활에서 큰 의욕이 없는 메마르기 직전의 사람이다. 영화는 자기 부정으로 시작해 파국으로 치닫는다.


TV에서 한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원하는 곳에 취업을 하고 나름 성공했는데 그 다음은? 이제 내 의미가 사라진 것 같다" 그러자 작가 유시민은 "인생에 의미란 원래 없는 거에요. 그러니까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은 잘못됐어요. 이제 내가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지 고민하겠다라고 말해야 하는 거죠." 이 일화는 주변에서 삶에 의욕을 잃어버린 친구에게 꼭 한 번씩은 해줬던 말이다. 그 말에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몇 분만이라도 힘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했던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들어야 할 말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대학생 때는 어려울 게 없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학점을 잘 받으면 그건 곧 좋은 회사에 입학할 수도 있다는 자산이 된다. 당장 눈 앞에 놓은 과제를 해결함으로서 어떤 달콤한 과실이 내게 떨어질지 예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취업 후의 삶은 그렇지 않았다. 오늘 내가 마친 일과 이번 주에 마칠 일이 어떤 보상을 가져다줄지 예상하는 건 어렵다. 어쩌면 지난한 그 길을 인내심을 가지고 견디는 게 어른의 길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가라앉았을 땐 사소한 미션을 만들고 성공시켜보는 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 예를 들어, 저녁을 안 먹는다거나, 하루에 1시간씩 운동을 한다거나 하는 것들. 겨울이고, 날이 춥고, 마음이 작아지기 쉬울 땐 이런 작은 성취가 힘이 될지 모른다. 영화 <싱스트리트>에는 동생의 음악적 성장을 지켜보는 형이 나온다. 형도 한 때는 음악을 사랑했지만 지금은 패배자 취급을 받는다. "형 요즘 담배 끊었어?"라는 동생의 말에 형은 울분을 토하며 "나도 뭔가 해보려고 그러는 거야! 뭐라도 해보려고 그러는 거야!"라고 말한다. 성공할 일만 남은 동생보다는 실패한 것들이 더 많은 형의 이야기가 내겐 더 와닿았다.


요즘 이석원의 <2인조>를 읽다 보니 전처럼 에세이가 잘 써진다. 좋은 글을 읽으면 글을 쓰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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