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조금 나아질 거예요, 저처럼.
힐링이라는 말보다 위로가 더 좋다.
'힐링'이 등장했을 때부터 스쳐 지나갈 말이라고 생각했다. 영어가 가지는 가벼움 때문이기도 했고, 여기저기서 힐링을 명사와 형용사로 무자비하게 갖다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힐링 대신 위로라는 말을 종종 쓴다. 말맛이 좋고, 듣는 순간 정말 위로가 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마 이유는 이것 뿐, 별다른 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위로라는 말을 꺼내는 이유는, 지금 내게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 무엇때문에 시릴까. 최근 난 맘이 시렸다. 아니, 아렸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예를 들면 힙합이나 영화와 같은 것들. 어쩌면 그것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아니라 '좋아하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한다고 말해왔던 것들에 대해 조금도 깊게 설명해줄 수 없을 때, 마음이 비어버렸다.
내가 겨우 이정도 밖에 알지 못했나?
하지만 '좋아하는 것=잘 아는 것'이라는 공식이 진리가 아닌 이상 나에겐 아무런 죄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독서나 영화에 대해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가 그러하다. 아마도 문화 생활에서도 반드시 뭔가를 얻기를 바라는 그릇된 강박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책 읽는 걸 좋아한 것만으로 충분하다. 고은의 시가 가지는 특성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고, 김훈의 문체에 대해 분석할 필요가 없다. 왜 설명해야 하나.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촬영 방식과 카메라 앵글에 대해 신경쓸 필요가 없다. 아니, 정확히는 필요가 없는 건 아니고 그런 방식은 그저 본인의 방식이다. 본인이 문화 생활을 영위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 그 방식을 남에게 주입할 필요가 없다. 영화는 그냥 본인이 좋아하는 영화가 좋은 영화다. 책 역시 무엇이 남지 않아도 읽을 때 재미있는 책이 본인에게 좋은 책이다.
내가 홍상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냥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심오한 뜻을 찾으려고 한 적도 있지만, 취미가 일이 되는 순간 삶의 중요한 부분을 놓칠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도 영화를 그냥 봤고, 내일도 그냥 볼 생각이다. 사실, 이런 말들은 생각 없이 낭비한 시간에 대한 변명일 수도 있다. 모르겠다 변명인지 아닌지.
오늘 밤은 마음이 시려서 바람이 차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