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지직' 우정에 금 간 이야기
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내게 문제 해결에 있어서 대화를 절대적인 선이라고 말했다.
"난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무조건 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대부분의 문제는 대화를 안 해서 심해지지 대화를 해서 생기는 건 아니지."
"그럼 넌 대화는 언제나 옳다고 생각해?"
"응"
그 친구와 나는 꽤 친했는데, 뚜렷한 이유없이 급속도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거리를 먼저 두기 시작한 쪽은 나였다. 아마 문제 해결방식에서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대화는 소통을 함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속마음을 숨기고 꽁해져있을 때 문제는 더 악화되기도 하고 오해는 더 커지기도 한다. 하지만 난 대화 못지 않게 침묵과 사색의 시간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거대한 자연에 길을 내는 것은 포크레인의 거친 움직임이 아니다. 몇 천 발걸음이 산 속에 길을 낸다. 물이 수천, 수만번 부딪쳐 물에 길을 낸다.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역지사지 해볼 생각이 필요했다. 그때 당연하다고 요구되는 대화는 포크레인의 거친 폭력처럼 느껴졌다. 고요한 아침을 조각내는 드릴 소리 같았다.
"우리, 그만 좀 얘기하자"
분명히 이 말을 했었다. 내 생각을 솔직히 말했다. 넌 대화를 절대선으로 믿지만 난 너와 다르다고. 난 역지사지를 해볼 시간이 필요하고 생각할 시간도 필요하다고. 세상엔 절대적으로 옳은 건 없다고.
확실한 것들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는 그 친구의 모습이 싫었다. 어쩌면 난 그에게서 나의 모습을 봤었는지도 모른다. 확언하고, 확신하고, 정답이 있다고 믿으며 그래서 낙천적인 모습, 그건 나의 몇년 전 모습이기도 했으니까. 난 지금 비관적이다. 회의적이다. 체념했다.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두 젊은이가 어쩌다가 잠시 마주친 것일까, 아니면 둘 중에 한 명이 잠시 방황하는 것일까. 나는 모른다. 자라온 환경이 달라서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은 오래 만나기 힘들다. 즉, 오랫동안 즐겁게 지내기 힘들다. 길어봤자 일년이다. 우정도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믿음을 바탕으로 한 감정의 영역이다. 우린 그 감정의 영역에서 베개싸움을 한다. 즐거움이라는 공통된 목표로 서로 웃으며 싸우지만 조금만 삐끗하면 부상자가 생기고 감정이 상한다.
사랑뿐만 아니라 우정 역시 베개싸움처럼 금 가는 건 한 순간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금을 내는 사건은 정말 별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그 친구를 떠올리면 마음이 무겁다. 잘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