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는 너를 모르고

부끄러운 스무살을 회상하며

by 김작가

난 매일같이 싸웠다. 논쟁을 즐기고 기꺼이 토론에 임하는 내 모습을 즐겼다. 쿨함이라고 생각했다. 이제서야 고백하는데 난 그 기억이 부끄럽다.


손짓에는 자신감을 장착하고, 눈빛에는 흔들림 없는 확신을 한 방울 넣었다. 그렇게 내뱉었던 말들은 아마 오답이었을 것이다. 그중에 정답이 몇개나 있었을까. 사랑에 대해 떠들던 말, 정치 현안에 대해 떠들던 말, 북한 문제, 인간 관계 등 정답이 없는 것들에 정답이 있다고 믿었다.


깨달음의 즐거움을 맛보기 시작한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잘난 척하고 다녔다. 아마 주변 사람들은 상처받았을 것이다.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내게 실망을 했겠지. '뭘 안다고 저렇게 떠들어대는 거지?'


아마 난 그때 기자가 되고 싶어서 신문을 열심히 보고 시사 공부를 열심히 했었다. 학과 공부와 토익를 따라가기에도 버겁던 친구들은 시사에 무관심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관심은 있어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난 은근슬쩍 그들을 무시했던 것 같다. "요즘 대학생들은 인문학에 관심도 없고, 책도 안 읽고, 정치에는 관심도 없지 않냐?" 난 근거 없는 자만심에 빠져 오만해져가고 있었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51113181150_1_filter.jpeg 합정동에 위치한 빨간 책방 카페, 이동진 평론가와 김중혁 작가의 캐리커쳐.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만나다

이런 내가 바뀌게 된 계기가 있다. 이상하게도 사람을 바꾸는 계기는 미세한 간격을 두고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그때쯤 나는 팟캐스트'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들으며 확신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위험한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확신을 가진 아이를 보고 체험하게 됐다. 마치 거울 보듯, 그 아이는 내 모습 같았다. 자신감과 자만심은 정반대에 있으면서 또 가까이 붙어있었다.


"저는 확신이 강한 사람들을 굉장히 싫어하는데,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은 뒤집어 말하면 지적으로 게으른 사람 같아요. 확신이 강한 사람들은 잣대가 하나에요. 하나의 잣대를 가지고 있으면 그걸 들이대고 아니면 버리고 맞으면 끌어들이면 되는 거죠. 하지만 수많은 문학의 우둘두둘하고 풍부한 질감을 느끼기 위해선 여러 잣대가 많아야 되고 오히려 잣대가 없어야 되죠. 원칙을 확고히 갖고 있는 사람은 잘 아는 사람 혹은 도덕적인 사람으로 보이지만 저는 오히려 게으른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하나의 잣대를 두고 '이 사람은 쓰레기, 이것은 영화야, 이것은 소설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건 굉장히 쉽고도 게으른 판단이란 말이죠."(이동진의 빨간책방 中)


최근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모습을 tvN<비밀독서단>에서 오랜만에 볼 수 있었다. 진행자 정찬우와 데프콘은 이동진의 말을 경청하며 빨려들어간다고 말했다. 마치 교주같다고 했다. 확실히 이동진의 말을 들으면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 종교의 역할 중 하나가 구원이라면 난 이미 이동진교일 수도 있겠다.


금요일 저녁은 반드시 불태워야 할 것 같은 요즘. 조용히 카페에 앉아서 글 답지 않은 글을 쓰는 저녁이 소중하다. 카페 안에서 울려퍼지는 가사도 모를 팝송과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마음을 편안케 한다. 옆테이블에는 수능을 친 두 학생이 열심히 모바일게임에 집중하고 있다. 그 둘의 투닥거림이 미소짓게 만든다. 기분이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방법은 그래도 소개팅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