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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Dec 18. 2015

놀랍도록 평범한 이야기로 만들다

실화의 힘을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던 <히말라야>

'웃긴 게 뭐냐면~'이라고 말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런 표현은 주로 재미없는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걸 알리는 용도로 쓰이는 것 같다. 분명, 이야기 자체는 흥미로운데 밑밥을 까는 순간 기대치는 올라가기 때문에 대부분 기대를 총족시키지 못한다.


초코 소라빵 6개를 사먹을걸.


글도 이와 마찬가지다. 제목이 중요하다. 인터넷 뉴스에서 수없이 낚이며 이제는 익숙해질 법하지만 여전히 제목에 낚이고 분노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아예 무슨 내용일지 예상 못하게 두루뭉술하게 제목을 쓰기도 한다.  <조석,이라는 사람>(ize 2015.12.18 글 위근우)'처럼 말이다.


이런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제목은 책임감이 무거워진다. 무거운 제목을 감당할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 별거 아닌 글에 대단한 제목을 붙이는 건 고도의 낚시질이다. ize 기사는 토달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영화 <히말라야>는 마치 엄홍길이라고 제목을 붙일 수 없어서 '에이 그냥 히말라야라고 하자'라고 해버린 것 같다. 영화의 내용과 상관이 없지는 않지만 아주 좋은 제목이라고는 할 수 없다. 모호하고 포괄적인 제목을 붙인 글이 퀄리티에 대한 책임감이 따르듯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과연 <히말라야>라는 제목을 감당할 수 있을까.


황정민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하지만 엄홍길 역의 황정민을 보며 <국제시장>의 무뚝뚝한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았다. 황정민의 연기는 언제나 옳다.


영화 포스터에는 황정민의 얼굴이 크게 보이지만 주연이 정우라고 해도 믿을 만큼 영화 초반은 정우가 이끈다. <응답하라>의 쓰레기 모습이 언뜻언뜻 보이지만 정우의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는 물이 제대로 올랐다.


아쉬웠던 점은 음악이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기대되었던 건 '산의 적막함'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였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착각이었다. <히말라야>는 산악영화라기보다는 휴먼 영화기 때문이다. 산의 적막함을  표현하기보다는 쉴 새 없이 오디오를 음악으로 채웠다.


조용한 북카페에서 오랜만에 책을 보는데 뒷자리에서 한 커플이 계속 수다를 떠는 것처럼 거슬렸다. 정말 다행히도 영화 후반에는 배경음악이 많지 않았다. 바람소리와 숨소리로만 채워진 음향이 들리지 '아 이게 산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에 땀을 쥐게 하는 <그래비티> <하늘을 걷는 남자>와 같은 장르물을 기대했다면 속상해질 것이다. 실화가 가지는 힘은 대단하지만 오로지 그 힘에 기댄 영화는 매체의 힘을 살리지 못한 게으른 영화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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